미켈란젤로 계보 잇는 조각 거장 한국을 찾다
미켈란젤로 계보 잇는 조각 거장 한국을 찾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3.13 11:22
  • 호수 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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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노벨로 피노티 전
▲ 노벨로 피노티의 초기 대표작 '무제'(1965년). 해체된 사람의 몸으로 총을 만들어 전쟁의 참상을 표현했다.

76세 고령 불구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는 이탈리아 국민작가
‘해부학적 걸음’ 등 전쟁 참상, 윤회사상 담은 작품 40여점 전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든 1945년 이탈리아 베로나의 한 마을. 한 소년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전쟁에 참여한 아버지를 6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만났다.
기쁨도 잠시 바로 그날 독일군이 이 마을을 점령했고 소년의 집에도 들이닥쳤다. 이탈리아 군복을 입고 있던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의 눈앞에서 독일군의 총칼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훗날 소년은 이때의 아픔을 조각으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조각가의 반열에 올라선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이탈리아 조각가 노벨로 피노티의 이야기다.
노벨로 피노티는 조각가로는 이례적으로 조각에 인색한 베니스비엔날레에 두 번(1966년, 1984년)이나 이탈리아 대표로 참여한 국민작가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미술관은 2월 28일부터 5월 17일까지 ‘노벨로 피노티 : 본 조르노’ 전을 연다. 본 조르노(이탈리아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피노티의 첫 개인전으로 40여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피노티는 주로 대리석, 청동 등을 이용해 신체‧문학‧신화‧사회적 메시지 등 여러 주제를 하나로 결합‧변형한 작품을 발표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한 ‘무제’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조각난 사람의 팔‧다리‧얼굴‧몸통 등을 이어 붙여 총(銃) 모양으로 만들었다. 피노티는 1톤이 넘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가진 작품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을 묵직하게 전한다.
전시는 ‘변형의 공간’, ‘길’, ‘궁극의 아름다움’, ‘존경을 드리며’, ‘사유의 정원’, ‘자연의 시간’ 등 여섯 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작품의 무게가 대부분 1톤에 가까워 하나의 작품을 설치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릴 정도로 대작들이 많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변형의 공간’은 예술적 재능과 열정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 세계를 압축해 선보인다. 피노티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대상이 완전히 다른 하나가 되는 변형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새로움’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 2004년 부산비엔날레 초청작이었던 ‘환생’에서 잘 나타난다. 해변에서 모래무덤 놀이를 하는 모자(母子)의 모습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여자의 다리와 남자의 다리를 반대로 포개 거북이를 표현했다. 이는 남녀가 죽어서 거북이로 다시 환생하는 것을 상징하는데 윤회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길’에서는 피노티의 걸작 ‘해부학적 걸음’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12m가 넘는 대형 조각으로 문(門)을 통과한 ‘다리’가 점점 짧아지다 다시 길어지면서 반대편 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역시 ‘탄생-성장-죽음-환생’에 이르는 윤회 과정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다.

▲ 1986년 作 '체르노빌 이후'. 사진=조준우 기자

피노티는 7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설치에 참여해 자신의 무거운 작품을 직접 들어 옮길 정도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힘을 원천으로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조각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궁극의 아름다움’에서는 이 기술로 인간의 몸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모래시계’는 피노티의 예술적 재능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흰 대리석으로 등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여성의 상반신을 조각한 이 작품은 실제 사람의 몸처럼 정교하다. 가슴과 배 부분을 완전히 파냈는데 대리석임에도 손이 비칠 정도이다. 이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으로 전시장을 찾은 국내 유명 조각가들도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피노티는 처음에 화가가 되려했다. 벼랑 끝에 내몰리면서 뜨겁게 예술혼을 불태웠던 반 고흐에게 반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지금도 마음이 느슨해지지 않기 위해 매일 잠들기 전에 자화상을 그린다. ‘존경을 드리며’는 피노티가 자신에게 영향을 준 반 고흐, 셰익스피어, 카프카 등에게 헌사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1984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인 ‘셰익스피어에게 바치는 헌사’를 눈여겨 볼만하다. 22개의 흰 대리석 조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자살 직전의 기도하는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린 비극성을 자신의 작품에 인용해 인간의 감춰진 욕망, 폭력성과 잔혹성 등을 나타냈다.
아울러 이번 전시는 미술관 내부가 아닌 미술관 입구 등 전시장 밖 야외공간에도 일부 작품을 설치해 봄의 기운과 더불어 조각품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 피노티가 이탈리아에서 서식하는 꽃을 주원료로 만든 향수 ‘베로나’를 전시기간 중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에게 무료로 증정하고 있다.
이밖에 전시장 한편에서는 성인남성 10명이 무거운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 등을 담은 ‘피노티와 함께한 100일간의 기록’을 상영해 전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입장료는 9000원이며 65세 이상은 7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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