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코끼리 작품 ‘상상력 만발’
시각장애인의 코끼리 작품 ‘상상력 만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3.13 11:24
  • 호수 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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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미술관 ‘코끼리 주름을 펼치다’ 전

코끼리 소재 전문화가와 시각장애인의 작품 한 자리에

“꼬끼리 코를 만지는데 손이 콧구멍 속으로 쑥~ 들어가버렸어요. 무진장 컸고 그 속에서 바람이 불었어요.”
인천혜광학교를 다니는 박민경 양의 작품 ‘인천코끼리’에는 이와 같은 설명이 적혀 있다. 작품은 시각장애를 가진 박 양이 자신이 손으로 ‘본’ 코끼리를 표현한 것이다. 길이가 5.5m에 달하고 높이도 성인 남자의 배꼽까지 이르는 이 작품은 코끼리보다는 하마와 더 닮았다. 하지만 유난히 거대한 코에서는 박 양의 설명대로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 것만 같았다.
‘코끼리 주름을 펼치다’ 전이 서울 노원구 북서울미술관에서 3월 5일부터 열리고 있다. ‘보는 것이란 무엇인가(What is seeing)’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본다는 것’의 본질을 탐구해온 엄정순 작가와 시각장애학생이 코끼리를 소재로 한 회화‧입체‧설치‧영상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 이야기를 뒤집어 보는 것에서 시작됐다. 맹인모상 이야기는 이렇다. 인도의 한 왕이 여섯 명의 장님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한 후 각자 소감을 말하게 했는데 여섯 장님은 자기가 만진 부분을 위주로 설명을 했다. 이 일화를 바탕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만 가지고 고집하는 것을 비판할 때 사용됐다.
하지만 이번 전시 작품을 둘러본다면 미술에서는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이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이용해 만들어낸 예술품이 비장애인들이 만든 작품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시각장애가 미술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은 시각장애학생들의 작품.

전시는 엄 작가의 ‘코끼리 걷는다’ 시리즈와 시각장애학생들이 참여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로 구성된다.
엄 작가는 코끼리를 무수한 선을 그어서 표현했다. 가로 7m 높이 2m에 달하는 캔버스에 표현한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1‧2’는 실제 코끼리의 옆모습을 그려놓은 듯하다. 하지만 코끼리의 머리 부분을 제외하면 하얀 벽에 마구잡이로 선을 그은 느낌이 든다. 녹색과 검은색 선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빨간색 선은 상처처럼 보인다. 눈동자를 볼 수 없는 코끼리에게서는 고통이 느껴진다. 이처럼 엄 작가의 작품들은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코끼리의 본래 모양을 유지하면서 작가의 개성을 더했다.
반면 시각장애 학생들은 코끼리를 더듬은 후에 상상을 통해 빚어낸 작품을 선보인다.
인천혜광학교 김선도 군의 ‘코끼리’는 뿔이 긴 코뿔소 같고 대전맹학교 김우진 군의 ‘코끼리를 만져 본 순서대로’는 거북이처럼 보인다. 긴 코가 달린 점은 코끼리와 닮았지만 상상력이 보태져 표현된 작품은 학생 개개인의 개성이 묻어 있다. 관람객들은 ‘인도 왕’과는 달리 제각각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는 코끼리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계속되고 관람료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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