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삶’ 그린 원작의 감동 100분 무대에 재현
‘순례자의 삶’ 그린 원작의 감동 100분 무대에 재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3.13 11:25
  • 호수 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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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아트홀 연극 ‘천로역정’
▲ ‘천로역정’은 하늘 성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존 버니언 원작 세계적 고전… 노래‧유머 가득한 작품으로 각색
숱한 역경 속에도 목표 잃지 않은 주인공 통해 현대인들 위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요새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90년대 히트했던 한 유행가의 가사를 인용해 심정을 토로한 것인데 끝내 해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고전의 힘을 빌려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연극 한 편이 있다. 서울 종로구 북촌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천로역정’이다.
이 연극은 존 버니언이 1678년 출판한 소설 ‘천로역정’을 바탕으로 한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천로역정’은 출판 이후 현재까지 20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된 세계적인 고전이다. 꿈의 형식을 빌려 영원한 목표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이 비유와 상징, 그리고 대화체를 활용한 문체로 표현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연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멸망의 도시에 살고 있던 필그림(순례자라는 뜻)은 어느 날 ‘전도자’로부터 도시가 신으로부터 멸망 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무거운 짐을 진 채 하늘 성을 향해 순례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필그림은 만나는 이웃들에게 도시의 멸망을 경고하며 하늘 성으로 함께 떠날 것을 권유하지만 모두 그가 미쳤다고 무시하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에 절망한 필그림은 멸망의 도시를 떠나 홀로 먼 여행길에 오른다.
길을 떠나자마자 그는 ‘낙담의 수렁’에 빠지고, 멸망의 도시 지배자 ‘아볼론’과 결투를 벌이는 등 숱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허영의 도시에서는 여행 중 만난 친한 벗 ‘믿음’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그림은 고난의 행군을 계속한다.
연극은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천국을 향해 가는 길, 즉 멸망의 도시에서 출발해 ‘낙담의 수렁’, ‘사망의 골짜기’, ‘허영의 거리’를 지나 마침내 하늘 성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연극은 제목과 내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기독교 색채가 강한 편이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맨 먼저 주목을 끄는 건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순례자를 나타내는 필그림을 비롯해 믿음, 소망, 절망, 연약함 등 연극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기독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이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늘 성을 ‘하늘’처럼 넓고 높은 ‘인생의 목표’로 상징적으로 생각하면 연극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린 작품으로 다가온다.
필그림은 여정을 떠나기 전 다소 피폐하고 나아갈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 혼란스러워하며 주변 현실에 절망한다. 이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보통의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 약육강식의 사회에 처음 진입한 사회초년생에게는 순결하고 고귀한 목표가 있다. 하지만 돈에 밀리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이 목표는 점점 퇴색해진다. 대개는 ‘생각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스스로에 대한 믿음조차 부족했던 필그림은 고통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방황하던 사회 초년생이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 되고 흔들리는 사회의 길잡이가 되어가듯 필그림 또한 성장해 나간다. 꿈을 잃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극은 이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우화를 통해 위로한다. 필그림이 하늘 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겪는 심신의 고통에 자신을 투영하면 극에 몰입할 수 있고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연극은 특정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이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원작의 방대한 줄거리를 일반 관객이 쉽게 이해하고 즐겁게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는 서은영 연출가의 말처럼 연극은 탄탄한 구성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기자들의 노래, 적절한 유머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연극은 5월 30일까지 계속되고 관람료는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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