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사랑과 치매 앓는 아내 간병이 내 천명인가 봐요”
“나라 사랑과 치매 앓는 아내 간병이 내 천명인가 봐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5.04.17 13:52
  • 호수 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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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순 전 국회부의장

“5·16 군사혁명 주체세력의 한 명에 끼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았던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게 돼 20여년 간 화려하다면 화려한 정치인생을 살았다. 5선 의원에 최연소·최장기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장관을 두 번이나 했으니 이만하면 관운이 좋았던 셈이다.”
장경순(94) 전 국회부의장이 정치경력을 간결하게 정리해주었다. 1960~80년 역동기의 산증인인 셈이다. 현재 자유수호국민운동 상임의장으로 있는 장 전 부의장은 아흔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서울 다동 나전빌딩 8층 사무실로 출근한다. 지난 4월 초, 그를 만나 열정적인 애국 활동과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에 대한 헌신적인 간병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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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사랑이 대단하다고.
“집사람이 6년여 전부터 치매를 앓아요. 오후엔 일찍 퇴근해 집에 가요. 제가 차려줘야 밥을 먹거든요. 작년부터 아주 안 좋아졌어요. 전에는 사무실에 나간다면 나라 위해 일하라고 어서 나가보라고 하더니만 요즘은 기생집에 가는 줄 알아요. 아마 내가 그런데 가는 꿈을 꾼 것 같아요. 애국과 아내 간병이 내 천명인가 봐요.”

-혼자 힘으로는 (간병이)쉽지 않을 텐데.
“우리가 독립문 근처 실버타운에 살아요. 나도 힘들어 며칠 전에 집사람을 병원에 입원시켰어요. 미국에 사는 딸들이 엄마를 보내라고 하는데 이제는 보낼까 해요. 딸 4명이 다 의사들이오.”

-자유수호국민운동은 어떤 곳인가.
“2002년 지인 중 한 사람이 서류 하나를 건네주었어요. 거기에 월남은 공산당원이 전 국민의 5%도 안됐는데도 공산화됐는데 우리의 좌파 세력은 그보다도 훨씬 넓게 퍼져 있다는 말이 쓰여 있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해 4월, 정래혁 전 국회의장, 김성은 전 국방부장관, 이대용 전 주월 공사 등과 함께 7인 호국위원회를 결성해 각계 인사 100인이 참여한 발기인 대회를 가졌어요. 나라가 공산화되지 않게 하려고 만든 겁니다.”

-그동안 어떤 일들을 했나.
“통진당 해산 국민감시단 활동, 전교조 교육감 후보 사퇴 촉구 등 수없이 많아요. 작년 6월에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가 청문회장에 서지 못한 채 낙마하는 거 보고 광화문네거리에서 여야 의원들 규탄하는 1인 시위도 했어요.”

-그 나이에 1인 시위라니….
“아흔 넘어 나 같이 움직이는 사람 거의 없어요. 이틀 동안 시위했어도 몸 하나 아프지 않았어요. 청문회 열지도 않고 그만두라고 하는 건 자유와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두고만 볼 수 없어 직접 나선 겁니다.”

-운영의 어려움은 없는지.
“초창기엔 재미교포들도 재정적 도움을 주었어요. 정부의 친북용공 태도를 비판하는 신문 광고를 대대적으로 내기도 했지만 요즘은 광고를 일절 하지 못해요. 가지고 있는 거 다 쓰고 내 연금까지 다 쏟아 붓고 있어요. 이제는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박정희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다고.
“1948년 육사 제7기 특별반에 들어갔을 때 처음 만났는데 당시 우리 중대장이었어요. 1950년 무렵에 박 대통령(정보국 전투정보과장)과 대구의 술집을 누비고 다녔어요. 박 대통령은 그때 33세였고 제가 5년 아래였어요. 나이차가 많이 나 으레 형님이라고 불렀지요.”

-혁명은 어떻게 시작됐나.
“5월 15일 오후 3시 무렵 박 대통령(육군 소장)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퇴근하고 신당동 댁으로 갔더니 ‘장 장군 오늘밤 거사요’ 이러는 겁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 놀라지 않았어요. 그때 우리나라 사정이 어떠했냐면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했으나 밥그릇 싸움에 여념이 없고 학생들은 남북통일 외치며 북한 젊은이들과 대화하겠다며 판문점으로 달려가는 판이었어요. 이 위기 국면을 수습하려면 강력한 도덕적 힘이 필요했는데 그 힘을 갖춘 집단은 오로지 군부밖에 없었으니까요.”

-혁명 과정에서 무슨 일을 맡았나.
“김포에 있는 낙하산부대(공수특전단)를 동원하는 일과 혁명에 반대하던 장도영 참모총장을 설득하는 일을 맡았지요. 제가 장 참모총장과 대학(일본 동양대) 동창이었거든요.”

-김종필 전 국무총리(JP)가 일간지에 혁명 얘기를 연재하고 있다.
“에이, 그거 다 뭐요. 하루를 살아도 그렇게 살면 안 돼요.”

-김 전 총리와 사이가 안 좋은 건가.
“그이가 저 때문에 외국으로 쫓겨난 적이 있어요. 1964년 ‘4대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 새나라자동차, 파친코)이 불거지자 ‘박 정권 물러가라’ ‘김종필 사퇴하라’는 소리로 나라가 시끄럽고 뒤숭숭했어요. 그래서 제가 박 대통령에게 당시 김종필 당 의장의 외유를 제안했던 겁니다. 진보정권과 손을 잡는(DJP연합) 등 혁명동지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정치행보를 하는 게 못마땅한 거지요.”

-농림부장관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은.
“요즘도 울창한 산림을 보면 ‘저 산림녹화는 내 작품이다’는 자부심에 뿌듯한 긍지를 느낍니다. 1960년대 사방사업 하는 거 보면 잔디 떼가 무거우니까 흙을 탈탈 털어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 맨땅에다 그냥 붙이는 식이었어요. 장마철 비에 토사가 흘러내려 떼를 덮어버리니 숨통이 막혀 다 죽어버리는 겁니다. 해마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됐어요. 제가 산림국장, 시도 산림과장을 다 불러 땅에 무조건 20×20×20cm 깊이로 구덩이를 파 거기에 논흙을 채우고 풀씨, 싸리씨 등을 파종토록 했어요. 잔디가 뿌리를 내려 비가와도 흘러내리지 않고 안정이 돼 벌겋던 산들이 빠르게 녹색을 띠었고, 그렇게 토양을 키운 다음에 식목을 하니까 나무들이 잘 자랐습니다. 37만 7000정보(1정보든 3000평으로 9917㎡) 가운데 27만 정보의 녹화작업을 사업 첫해인 1962년에 해냈어요.”

-40대 초반에 국회부의장이 됐다.
“1963년 11월, 제6대 국회의원 총선에 고향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어요. 국회 개원 직후 박 대통령이 호출을 하더니 국회부의장을 하라는 겁니다. ‘초선에 나이도 새파란 제가 입법부의 2인자가 된다면 세상 사람이 뭐라고 하겠습니까’하고 완곡히 사양했지만 뜻을 거두지 않았어요,”
-나이가 적어 힘들지 않았는지.
“내 재임 기간(1963~1972) 중 국회 부의장을 한 야당 의원은 나용균·이상철·윤제술·정해영 네분으로 나이로 보나 정치경력으로 보나 까마득한 대선배였어요. 이분들을 항상 정중하게 예우했어요. 국회의장은 어찌 보면 입법부 수장이라는 상징적인 자리였고 실무적인 일은 여당 부의장인 내 손에서 거의 다 처리됐어요. 가령 군부대 위문을 가는 경우 그분들은 제가 앞장서야 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항상 그분들을 앞에 떠밀어 체면을 세워주고 나는 뒷자리에 서거나 앉았어요.”

-국회부의장으로서 한 일이라면.
“본의 아니게 ‘날치기 사회’를 3번 봤어요. 한번은 베트남 전투병력 파견 승인이고, 두 번째는 예비군법 처리, 세 번째는 경인고속도로 건설자금 마련을 위한 석유류세법 개정이었어요. 날치기 통과를 강행하고 나서 기분이 무척 착잡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나라를 위해 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계를 떠난 이유는.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자 극심한 충격과 허탈감에 빠져 더 이상 정치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광복 70주년을 맞는 소감은.
“나 죽기 전에 자유통일이나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건강은 어떤가.
“귀가 잘 안 들리는 거 빼고는 좋아요. 당뇨는 좀 있지만 혈압은 괜찮아요. 요즘도 점심·저녁으로 막걸리 한병씩 마셔요. 건강 비결이라면 매일 걷는 겁니다.”

-유도 10단이라고.
“인생의 목표를 강력한 조국, 잘 사는 농촌, 유도 최고봉에 두고 살아왔어요. 유도는 중학교 때 시작해 일본의 유명한 유도 도장 ‘강도관’에서 배웠지요. 9월에 개최하는 세계유도인대회에서 저를 ‘유성’(柔星·유도의 별)으로 추대한다고 해요. 한국에는 저 혼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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