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불교 중흥 운동의 중심지
조선시대 불교 중흥 운동의 중심지
  • 조상제 지하철 여행가
  • 승인 2015.04.24 11:32
  • 호수 4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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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여행]<25>봉은사
▲ 봉은사에서는 ‘장흥사명동종’ 등 다양한 문화재를 볼 수 있다.

봉은사(奉恩寺)는 신라 원성왕 10년(794년)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한 견성사(見性寺)가 전신으로 알려졌다.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 윤씨가 연산군 4년(1498)에 지아비 성종의 능(선릉)을 위해 능의 동편에 있던 견성사를 원찰(願刹)로 삼았고 이름을 봉은사로 고치게 된다. 얼마 후 중종 25년(1530) 정현왕후가 승하해 선릉에 합장되자 봉은사는 원찰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이때부터 봉은사는 태조와 세조의 원찰이었던 회암사(檜岩寺), 세조의 능인 광릉(光陵)의 원찰 봉선사(奉先寺)와 더불어 조선 왕실에서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찰 중의 하나가 된다.
명종의 재임시절 봉은사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게 된다. 평소 불교를 신봉하던 문정왕후는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승 보우(普雨)를 등용해 침체된 불교의 중흥을 꾀하는데, 봉은사가 그 중심에 섰다.
위세를 떨치던 보우의 몰락과 더불어 봉은사의 사세도 급격히 기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 절이 전소되기도 했다. 숙종 18년(1692년) 왕명으로 다시 옛 모습을 찾는가 싶더니 1939년 발생한 화재로 판전(板殿)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차츰차츰 복원돼 현재 절 경내에는 일주문·천왕문·법왕루·선불당·심검당·대웅전·북극보전·영산전·명부전·영각·판전 등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는 것도 아니고 연륜이 오랜 것도 아니어서 ‘절맛’이 나지 않는다.
또 이곳에는 철종 때 승려 영기와 남호가 조각한 ‘화엄경’(華嚴經), ‘금강경’(金剛經), ‘유마경’(維摩經) 등 불경판(佛經板) 13종, 3479장이 보존돼 있다. 이들 경판이 보관된 전각이 판전(板殿)인데 판전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사망하기 3일전에 쓴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보물 제321호로 지정된 ‘지정4년고려청동루은향로’(至正四年高麗靑銅縷銀香爐)는 동국대학 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는데 이 향로는 사명대사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장흥사명동종’(長興寺銘銅鐘)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돼 있다. 이 종은 1392년에 주조된 종으로 원래 장흥사에 있던 것을 봉은사로 옮겨온 것이다.
◆가는 길: 2호선 삼성역 5·6번 출구로 나와 코엑스 전시장 뒤로 걸어가면 나온다. 또는 7호선 청담역 3번 출구로 나와 영동대로를 따라 걷다 경기고등학교를 지나면 나온다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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