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거장의 ‘손길’
가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거장의 ‘손길’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5.04 09:51
  • 호수 4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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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최승천 전
▲ 나무로 그리다(2013년).

‘한국 목공예 선구자’로 불려… 1970~2000년대 대표작 120여점 소개
새‧나무 표현한 초기작부터 회화 접목한 최근작까지 변화 한눈에

1970년대 프랑스의 한 공원. 동양에서 온 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40대 진입을 목전에 둔 남자는 자신이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한 정원사가 공원 내 잎이 무성한 가로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원사의 가위질에 잎이 떨어져 나가고 감춰져 있던 무수한 잔가지들이 드러난 순간, 남자는 어린 시절 자신이 풀과 나무들 사이에서 새들과 함께 뛰어놀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한국으로 돌아가 새와 나무를 이용한 목공예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최승천(81) 작가는 나무를 이용한 공예품을 만들게 된 경위를 이렇게 회고했다. 무엇을 표현할지 고뇌하던 30대 중후반의 남자는 이제는 어엿한 한국 목공예의 거목이 됐다.
‘한국 현대목공예의 선구자’로 불리는 최승천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오는 9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한국현대미술사 연구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기획한 ‘한국 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전시에서는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대표작 120여점이 소개된다. 전시는 ‘시간의 풍경’을 주제로 작가가 나무의 느낌과 이미지에 자신의 색깔을 입혀 구축한 작품세계를 4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 새와 나무(1978년).

먼저 ‘은유로서 자연’은 작가가 공예가로서 도약하는 시기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1970년대 초 제작한 목기와 새‧나무의 실제 모습을 본떠 만든 초기 목공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최승천은 이 시기 자연의 향과 정감이 있는 목리문(木理紋)을 살리는 조각수법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나무가 가진 특징을 탐구하고 나무에서 우러나는 느낌을 최대한 이끌어내려고 했다. 이는 ‘새와 나무’ 시리즈에 잘 드러난다. 버드나무 등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를 정교한 솜씨로 조각한 후 한 쌍의 새를 배치함으로써 자연의 안락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생동하는 봄기운으로 뻗어나간 잔가지들과 그곳에 살포시 앉은 한 쌍의 새는 우리에게 자연으로의 회귀와 안식을 꿈꾸게 한다.
초기작이 나무 본연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1980년대에 제작한 ‘본질을 묻는 오브제’에서는 새와 나무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1970년대 새와 나무’ 시리즈가 실제 나무의 모습을 재현했다면 ‘1980년대 새와 나무’ 시리즈는 삼각형과 사각형 등 도형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나무’를 표현했다. 대상이 갖고 있는 특징을 간결하게 변형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 관찰하고 이를 해석해 새로운 조형물을 만들어냈다. 이는 공예의 ‘실용’보다는 ‘예술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최승천은 예술성을 강조한 목공예품이 늘어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목공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선구자라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행위와 공간의 조형’에서는 일반 가구에 예술성을 접목시킨 ‘아트퍼니처’(Art Furniture)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990년대 제작한 ‘새가 있는 풍경’ 시리즈는 자연을 우리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적송‧향나무‧느릅나무‧단풍나무 등 국내산 나무와 작가가 이전에 다듬은 예술세계를 접목해 완성한 가구작품을 선보인다. 조선시대의 목가구와 고건축에 사용된 이음새와 짜임새의 공정을 바탕으로 표현한 비례미와 간명한 면(面) 분할, 독창적인 조형감각은 가구를 넘어 ‘감성적 기능’까지도 함께하는 한국 목공예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동색을 작품에 대입함으로써 민화의 화려함과 한국인에게 내재된 향수를 재현하고자하는 열망을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 최승천은 목공예와 회화를 접목하는 시도를 한다. ‘참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움’에서는 얇은 나무판을 붙여 밑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색을 칠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나무로 그리다’ 시리즈와 함께 ‘가족’ 시리즈를 통해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도 예술가로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준다. ‘새’와 ‘나무’로 시작된 작가의 화두는 ‘가족’이란 주제로 확장된다. ‘가족’ 시리즈를 통해 유년시절의 자신과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을 정겹게 표현했다. 이들은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새’를 머리에 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전시에서는 작가의 실용적인 작품과 소품들로 다실‧거실‧안방을 꾸며 놓아 일상 속에 스며든 공예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람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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