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 이호선
  • 승인 2015.06.26 16:38
  • 호수 4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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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요 중에 황정자씨가 불렀던 ‘노랫가락 차차차’라는 곡이 있다. 1954년에 만들어지고 1963년 편곡돼 큰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요는 늙으면 못 노니 젊을 때 놀자는 말이다. 놀이는 젊은이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현대를 넘어오면서 어쩌면 이 노래에서 기인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꽃이 만발한 한창의 봄을 일컫는 ‘화란춘성’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진다는 뜻의 ‘만화방창’ 모두 젊음의 다른 이름들이다. 정말 늙어지면 못 노나?
현대 노년이 어렵다고 말하며 꼽는 4가지 고통이 ‘빈고(貧苦)’, ‘병고(病苦)’, ‘무위고(無爲苦)’, ‘고독고(孤獨苦)’이니 위 노랫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프면 놀 수 없고, 병들면 놀 수 없고, 놀 일이 없으면 놀 수 없고, 혼자 있으면 놀기 어려우니 그야말로 청춘에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놀다’라는 말은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낸다는 말이다. ‘놀이’ ‘재미’ ‘즐거움’이라는 단어와 연결하자면 한자어 ‘여가(餘暇)’, 영어 ‘레저(leisure)’라는 말과도 이어진다.
물론 여가라는 말이 우리말의 ‘짬’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짬’보다는 여가가 좀 더 긴 시간적 길이가 느껴진다. 물론 북한에서는 ‘여가’나 ‘레저’를 짬으로 표현하고 있긴 하다. 일단 여가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인간의 생물학적 생존이나 사회적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시간, 즉 직업상의 일과 노동, 식사, 수면, 생리작용 등에 쓰는 시간 이외의 한가한 시간 혹은 자유로운 시간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사람에게 여가란 얼마나 중요한가!
인간이 평생 배우고 일하고 쉬겠지만 우리는 청년시절까지 시간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고, 중년시절 대부분은 일로 채우고, 노년기 대부분은 주로 여가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교육보다는 점차 일과 여가에 대한 비중이 커진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쏟다보면 어느새 나이가 들고, 노년은 곧 여가와 동의어가 된다.
사실 우리나라 노인들처럼 82.4%가 TV만 보는 현실에서 여가는 ‘실직’, ‘무능’, ‘퇴물’, ‘빈둥거림’, ‘삼식이’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특히 남성들에게 여가는 ‘고통스럽고도 끝나지 않는 휴가’이다. 평생 일을 찾아다녔고, 일로 시간을 보냈고, 일로 성취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여가는 매우 낯설고 그 시간적 공백을 메운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의 청춘들이 밤낮 달리는 경부고속도로의 아스팔트를 깔았던 세대는 새마을 운동 모자를 쓰고 그저 일만 있었으면 좋았던 가난의 세대였고, 테헤란로 마천루의 주역들인 베이비부머들은 민주화를 통과하며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국산 자동차들이 상습정체를 이루도록 자동차를 생산하고 수출한 세대들이었다.
가난의 세대는 가난해서 못 놀았고, 생산과 수출의 세대는 바빠서 못 놀았다. 평생 가난하고 바빠서 놀지 못했던 이 세대들이 지금 노년을 살고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했던가?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어 50년 넘은 빨랫방망이를 못 버리는 할아버지 세대가 여가를 위해 돈을 쓸 수 있을까? 늘 바쁘기만 해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은퇴해 삼식이로 불리는 아버지 세대는 누구와 놀 수 있을까?
‘놀이’를 고민해보자. 일하듯 아이 낳듯 ‘놀이’를 생각해보자. 뭘 하고 놀지에는 답이 없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놀 수 있는 ‘꺼리’를 찾아야한다. 모든 글이 생각을 주고 모든 문제는 답을 첨부한다. 이 글은 숙제를 주고자 한다. 나만의 ‘놀이’를 적어보자. 꼭 해보고 싶었던 그 놀이를 일단 적기만 한다면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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