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동포동’한 인물들로 구현한 풍만함의 미학
‘포동포동’한 인물들로 구현한 풍만함의 미학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07.17 14:03
  • 호수 47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가람미술관 ‘페르난도 보테로’ 전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유명… 최근작 포함 90여점 전시
뚱뚱한 예수 이색적… 역동적인 서커스와 투우 그린 연작들 볼만

▲ 2001년 作 '발레 바의 무용수'. 육중한 몸을 이끌고 유연하게 발레를 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는 무용수의 표정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지난 7월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앞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매혹적인 여인의 나신을 그린 ‘머리를 푼 채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를 배경으로 한 ‘모딜리아니’ 전의 홍보물과 이와 대비되는 뚱뚱한 여자 그림이 삽입된 전시홍보물이 나란히 걸려 있던 것이다. 몸도 가누기 힘들 것 같은 이 여자를 그린 당사자는 정작 자신은 뚱뚱한 사람을 그리지 않는다고 발뺌을 한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이야기다.
인물을 풍만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80)의 작품이 6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오는 10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린 90여점의 회화작품이 소개된다.
전시에서는 보테로의 작품을 ‘정물’, ‘고전미술의 해석’, ‘라틴의 삶과 사람들’, ‘서커스’, ‘투우’ 등 5개의 주제로 나눠 전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보테로가 그린 개성만점의 정물화가 관객을 맞이한다. 그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대상을 본래의 크기 이상으로 확대해 그렸다. 정물의 형태를 강조함으로써 일종의 관능성을 표출하려 했던 것. 과일, 악기, 꽃 등의 표현에 있어서도 비율을 마음껏 변형하고 캔버스를 가득 채워 풍만함을 표현했다.
자르다 만 과일들과 조금 벗겨진 과일의 껍질, 과일을 집으려고 하는 듯한 손의 등장을 통해 기존의 딱딱한 정물화와는 차별화 된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수박’(2000)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수박을 그린 작품인데 보통의 정물화가 원래 모습에 충실한 것과 달리 보테로는 반쯤 잘려 빨간 속살을 드러낸 수박을 여백이 거의 없을 정도로 화면에 가득 채웠다. 잘린 수박의 한쪽에는 포크 두 개를 꽂아 놓아 단조로울 수 있는 그림에 익살스러움을 더했다.
‘고전미술의 해석’에서는 벨라스케스, 루벤스, 반 고흐, 반 아이크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작품을 차용해 같은 주제를 본인만의 해석으로 패러디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보테로는 습작기에 많은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을 통해 대가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배우며 색을 통한 양감 혹은 화면을 구성하는 구도와 형태에 대해 알게 됐다.
전시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그림 ‘시녀들’을 패러디한 작품 ‘벨라스케스를 따라서’(1984, 2006) 연작이다. ‘시녀들’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딸 마르가리타와 그녀를 보필하는 시녀들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마르가리타 공주와 못생긴 난쟁이 시녀가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테로는 자신의 연작을 통해 못생긴 시녀는 연민의 시선을 담아 원작보다 아름답게 그렸고 공주는 비대하게 패러디해 약자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이런 시각은 ‘라틴의 삶과 사람들’로 이어진다. 과일을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가는 여자,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흥에 겨워 춤추는 사람들 등 라틴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또 예수, 교황, 주교, 수녀 등 성직자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성직자들을 기존의 시각과 달리 후덕하게 표현해 일부 관람객들은 다소 거북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미술로만 본다면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특히 예수의 고행을 그린 연작이 인상적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도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모습으로 그렸는데 종교 비하보다는 인체의 대한 그의 시각을 느낄 수 있다.
라틴 서민들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음악가들’ 연작도 흥미롭다. 무심한 표정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4명의 연주자를 그린 작품인데 빨강과 노랑 등 원색으로 표현해 정렬적인 라틴 음악이 들리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가 그린 작품 중에 주목할 것은 지나치게 풍만하게 그린 누드화들이다. 과장되게 여성의 몸을 확대하면서 외설적인 느낌은 생략시킨 반면 여성 신체 특유의 볼륨감과 모성애를 부각시킨다.
보테로는 휴가 중 우연히 보게 된 서커스에 매료돼 이에 대한 연작을 선보였다. 평온한 일상과 다르게 말 위에서 묘기를 부리고 공중곡예를 펼치거나 사자‧코끼리를 이용한 쇼를 보여주는 서커스가 단숨에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보테로는 ‘그네 타는 곡예사’(2007), ‘서커스’(2007), ‘저글링을 하는 사람과 곡예사’(2008) 등의 작품을 통해서 서커스 역시 ‘화려한 색채와 풍만한 형태’라는 그만의 화법으로 재탄생시킨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투우’도 놓쳐선 안 된다. 어린 시절 투우학교를 다녔던 보테로는 평생에 걸쳐 투우 연작을 선보인다. 투우는 투우사가 등장해 카포테(Capote)라는 빨간 천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소를 흥분시키며 시작된다. 20여 분간의 대립 끝에 긴장감이 절정에 이를 무렵 투우사가 정면에서 돌진해 오는 소의 심장을 찌름으로써 끝이 나는 경기다.
보테로의 투우 연작은 이 역동적인 과정을 담고 있는데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죽은 소를 끌고 가는 사람들’(1987)은 처참하게 죽은 소와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투우사와 관중들을 대비적으로 그려 인간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관람료는 1만3000원이며 65세 이상은 6000원.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패러디=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특징을 흉내 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기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