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성 상담사 제도, 예산 없어 이벤트로 끝난다
노인 성 상담사 제도, 예산 없어 이벤트로 끝난다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5.08.28 10:53
  • 호수 4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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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협회 등서 육성… ‘동년배 성 상담사’도 등장

전북 전주에 사는 A어르신(78)은 얼마 전까지 부인이 성관계를 거부해 속병을 앓아야 했다. 이유는 늙은 나이에 관계를 갖는 것이 남세스럽다는 것. 성 욕구를 홀로 해소해야만 했던 그가 종로3가 등 일명 ‘박카스 아줌마’들이 출몰하는 장소를 기웃거리다 발길을 돌린 적이 부지기수였다.
고심 끝에 A어르신은 양지노인복지관 노인성상담센터를 찾아 고충을 털어놨다. 센터에서 만난 상담사는 부인이 접촉을 거부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물어보길 권했고, 그 결과 A어르신은 부인이 성 관계 후 중요부위에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부부는 병원에서 전문의의 검진과 치료를 받은 후 정상적인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

▲ 노인 성 상담사 제도가 예산부족 탓에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동년배 노인 성 상담사’ 사업 간담회·평가회에 참여 중인 어르신들. 제공=경북 경산시노인종합복지관

동년배 상담사들 “교육 부족… 깊이 있는 상담 못해”
전문가 “정부의 인식 개선과 관련 예산 지원 필요”

서울에 사는 B(70·여) 어르신은 최근 한 남성과 교제를 하다 고민에 빠졌다. 4년 전 사별한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연인과 성적인 접촉을 할 때면 죄책감은 더욱 커졌다. 그러던 그는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인근 노인 성상담센터를 알게 됐다.
상담사는 그에게 노년기의 사랑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숨기거나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그제야 B어르신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지자체, 노인복지관 등에서 운영 중인 노인 성 전문센터 소속 상담사들이 그간 성과 관련해 하소연할 곳 없던 노인들의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특히 전국 공공기관 최초로 육성된 경기도 ‘노인 성 교육사·상담사’는 2013년부터 관내 노인복지관, 노인대학, 경로당 등 노인시설에 파견돼 노인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있다.
성기능 감퇴 문제로 마음고생 했던 C어르신(경기 의정부)은 “노인 성상담사로부터 아내가 좋아하는 마사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부부간의 성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자신감을 찾았다”고 귀띔했다.
뿐만 아니라 인구보건복지협회와 지역 보건소도 각각 지회와 자체 상담소에서 상담사를 육성해 관련 상담 및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담 건수는 부족한 편이다. 특히 직접 기관을 찾아와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노인들 사이에선 아직 성적인 담론을 금기시 하는 풍토가 남아있어 상담사와의 대면을 꺼려 한다는 것이 일선 상담사들의 설명이다. 

올해 2월 노인 전용 성 상담소 운영을 시작한 부산의 부산진구보건소에 따르면 5개월 동안 접수된 상담 건수는 25건에 불과했다. 보건소 관계자는 “직원들이 보건소를 찾는 노인에게 상담을 권하면 쑥스럽다며 피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는 2013년부터 전국 시·도 15개 기관에서 ‘동년배 성 상담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들은 경로당 등에 파견돼 또래의 성 관련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
임모(69)씨는 지난해부터 인근 노인복지관 소속 동년배 성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역시 이전까지 다른 고령자들처럼 성에 관해선 기피하는 입장이었지만, 지인의 소개로 성 상담사 교육을 받은 후부턴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노인도 성욕이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주 하루씩 관내 경로당을 순회하는 임 씨는 이러한 내용을 전하며 상담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는 “처음엔 성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는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던 어르신들도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새 친해져 마음의 문을 연다”고 밝혔다.
그러나 임 씨는 보완해야 할 점들이 있다고 밝혔다. 해당 분야에 관한 자료가 부족하고, 파견 전 실시되는 교육량이 부족해 깊이 있는 상담이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는 비단 노인복지관 뿐만 아니라 노인 성 상담 사업을 진행 중인 모든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상의 문제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거나, 관련 교육을 꾸준히 지원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의 노인 성 관련 인식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숭실사이버대학교 이호선 교수는 “국내 노인 성 관련 교육 및 상담은 지자체나 협회 등이 전담하는 실정인데, 이럴 경우 전문가나 재원이 부족해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동년배 성 상담사와 같은 자원봉사성 사업은 차치하더라도 지자체나 협회 등이 시행 중인 노인 성 상담 관련 사업들은 대부분 해당 기관의 재정적 열악함 탓에 꾸준히 운영되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실례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전국 3곳의 노인성상담소에서 운영하던 ‘노인 성 상담’ 업무는 현재 중단 위기에 처해있다. 2010년부터 이 업무에 대한 위탁 운영을 맡긴 복지부의 지원이 2012년부터 끊겼기 때문이다.
이호선 교수는 “정부가 치매나 독거노인문제처럼 노인의 성 관련 문제를 심각한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여 관련 사업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며 "또한 이미 해당 사업을 전개 중인 지자체나 협회에 예산을 지원해 전문상담 인력의 양성과 지속적인 배출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연 기자 lees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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