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 본 사람이 배고픔을 안다
굶어 본 사람이 배고픔을 안다
  • 이호선
  • 승인 2015.11.06 11:09
  • 호수 49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희춘과 서영춘 콤비는 정말 웃겼다. 특히 7대 독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지었다는 그 긴 이름을 따라했던 기억이 삼삼하다. 그 이름인즉 ‘김수환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치치카포사리사리센타워리워리세브리깡무두셀라구름이허리케인에담벼락담벼락에서생원서생원에고양이고양이엔바둑이바둑이는돌돌이’다. 이 이름은 리듬에 맞춰 팔을 흔들어대며 부르면 된다. 그 스토리를 보면 이 이름을 지은 점쟁이가 아이는 ‘빠뜨리면 죽는다’고 경고한다. 서영감은 이 경고를 아이 이름을 말할 때 한 글자라도 빠뜨리면 죽는다고 해석하여, 그 귀한 독자가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를 살리기 위해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이름을 불러대다가 급기야 일은 벌어지고 만다. 그제서야 서영감은 그게 이름의 글자가 아니라 물에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죽지 말라 부른 이름으로 아들은 죽었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코미디 주제인 이 이름은 여러 번의 패러디를 거쳐 지금 한 항공사의 광고에서 쓰이고 있다. 1970년대 초에 나온 코미디였으니, 40년 세월에 잊혀 지지 않는 이름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첫 이름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어디 이름뿐이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환경이 나를 선택한 결과에는 대부분 저항 한번 못해보고 주저앉아야하는 순간들이 닥친다. 누구나 노력이 좌절되고 평생의 업적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한번 안했겠는가마는 좌절은 늘 고통스럽고 당황과 분노를 가늠하기란 매번 어렵다.
요즘 감정노동자들의 고통과 좌절 이야기가 언론에서 계속 터져 나온다. ‘갑질’이니 ‘을의 삶’이니 하며 세상 모든 ‘을’의 비애들이 쏟아져 나오고 더불어 ‘갑’의 횡포를 막아낼 법적 대안까지 고려중이다. 전 국민이 피해자로 살아가는 요즘, 사회적 을이 되어버린 노인들의 나이를 두고 사회가 들썩인다. 나이가 많으니 월급을 깎자하고 더 늙어서 연금을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한다. 65세는 젊으니 노인의 나이를 올리자고 하며 어른들의 양보를 요청한다. 일단 노인의 나이를 70세로 올리자는데, 글쎄!
사실, 노인의 나이 기준이 몇 살이면 어떤가? 생물학적 나이가 얼마이건, 사회적 나이가 몇 살이건, 심리적 나이가 몇이건 무슨 상관인가? 먹을 것 있고, 빌릴 일 없고, 가진 것만으로도 먹고살고, 또 그러다가 돌아가면 무슨 상관인가? 상관없다. 다만, 먹고사는 일이 남은 생애 내내 고민이고, 가진 것도 자식들에게 다 털린 지 오래라 100세시대 속에 살 날이 고민인 게 문제다.
누군들 눈치보고 싶나, 누군들 자립하고 싶지 않겠나, 누군들 베풀고 싶지 않겠나. 시대가 이리 변할 줄 몰랐다. 이리 빨리 변할 줄 진정 몰랐다. 열심히 살면서 내 부모가 내게 보여준 대로 자식들에게 다주었고, 그게 사랑의 방식이라고 알았으니, 잘했건 못했건 그게 최선이다. 자식의 이름을 79자에 걸쳐 짓지는 않았어도 육성회비부터 대학 등록금, 그리고 결혼할 때는 대출까지 내어서 집을 해줬다. 물론 전세였지만 그 옛날 아홉식구 모여 살던 단칸방에 비하면 대궐 같은 집이다.
그러나 더 주지 않는 것을 불평하고, 더 좋은 것이 아닌 것을 불만하던 이 시대가 남은 월급도 깎고, 연금 없이는 풀죽도 못 먹을 상황인 노인 나이를 올리자니 어쩌겠는가? 풀죽을 먹어본 세대라 풀죽 맛을 안다. 수제비로 연명해본 세대라 수제비 맛도 안다. 소나무 껍데기도 벗겨 먹어본 세대라 소나무죽 맛도 알고 보릿고개에 굶어봤으니 굶을 줄도 안다. 다해본 세대인데, 한 번 더 하지 못할 일이 뭐있겠는가. 다만, 풀죽을 먹자니 제초제가 가득이고, 수제비를 먹자니 밀가루도 비싸다. 소나무 껍데기를 벗겼다가는 바로 신고가 들어가고 굶는 일, 솔직히 그건 하고 싶지 않다.
양보할 수 있다. 누구나 부담되기 싫다. 그러나 기억했으면 좋겠다. 장수하라고 지어준 긴 이름, 그 이름을 지었다고 아들이 죽은 건 아니었다. 그저 오래 살기를, 죽지 말고 8대, 9대 그 뒤 먼 후손까지 길이 번성하라고 점쟁이에게 없는 돈 빌려 지은 이름이다. 그가 이름을 잘못 지어서라고 말하지 마라. 그는 최선을 다했다.
굶어본 자가 배고픔을 안다. 보릿고개를 넘어본 자가 버짐이 뭔지 알듯, 아리랑 고개를 넘어본 자가 피눈물의 맛을 안다. 궁핍이 우리에게 왔고, 보릿고개와 전쟁이 우리에게 왔다. 그러나 두 번의 배고픔은 싫다. 두 번의 보릿고개, 두 번의 아리랑 고개는 싫다. 노인나이, 올려도 좋다. 궁핍하지 않다면, 두 번째 보릿고개만 아니라면, 몇 살이든 어떤가? 웃을 일 없는 세상에 이런 말을 하다니 참 웃긴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