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회복한 어르신 정착 돕는 ‘귀한동포 경로당’
국적 회복한 어르신 정착 돕는 ‘귀한동포 경로당’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11.06 13:36
  • 호수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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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국적 회복 급증… 귀한동포 노인 15만명 육박
▲ 최근 귀한 동포 노인들의 국적 회복이 늘면서 이들의 정착에 경로당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은 한 귀한 동포 경로당에서 서예교실을 운영하는 모습.

서울‧경기 귀한동포 경로당 8곳 개설, 1000여명 회원 활동
빈곤 극복이 과제… 경로당서 서로 의지하며 삶의 희망 찾아

“차 조심하면서 꼼꼼히 쓰레기를 수거해주세요.”
날씨가 쌀쌀해진 지난 1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에서는 이 지역 행복나눔경로당에서 매주 1회 실시하는 거리청소가 진행됐다. 권영주(80) 회장을 필두로 10여 명씩 2개조로 나뉜 노인 20여 명은 추워진 날씨에도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가벼운 옷차림 위에 ‘노인자원봉사클럽’ 조끼만 걸친 채 거리를 청소했다. 젊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묵묵히 1시간 동안 거리를 정비한 이들은 평범한 노인들처럼 보이지만 과거 조선족으로 불렸던 ‘귀한(歸韓) 동포’들이었다.
최근 국적회복을 신청하는 귀한 동포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귀한동포 노인들의 여가시설로 활용되는 ‘귀한동포 경로당’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귀한 동포란 일제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중국 등지로 떠났다가 다시 고국 땅을 밟아 국적을 회복한 동포와 귀화한 2~3세대를 지칭한다. 1949년 10월 1일 이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그 배우자, 자녀들이 이에 해당한다.
2004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외국국적 동포의 국적회복 등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 제정되면서 2005년부터 귀한 동포들의 국적회복이 본격화 됐다. 2004년 이전까지 연 평균 100명 미만이었던 국적 회복자들은 2005년부터 연 평균 1만명으로 급증했다. 동포단체들은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조선족 동포가 50여 만명이며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을 취득한 조선족은 약 1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 영등포‧구로‧금천구와 경기 안산‧성남‧고양시 등 서울‧경기 지역 8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 이들 밀집거주지를 중심으로 2008년부터 경로당이 생기고 있는데 현재 해당지역 지회별로 각각 1개의 귀한동포 경로당이 운영 중이며 총 1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일반 경로당에 가입된 인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이들은 과거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왔다가 중국보다 살기 좋은 환경에 반해 완전히 정착했다. 1949년 이전 출생자들로 구성되다보니 대부분이 70~80대 노인들이다. 이들은 국적이 회복되기 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생활하느라 충분히 재산을 모으지 못해 상당수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행복나눔경로당 구현이(여‧78) 어르신은 2005년 아들과 함께 국적을 회복했는데 현재 아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고 자신 또한 20만원의 기초연금에만 의지하고 있다. 구 어르신은 “곰팡이가 핀 지하 단칸방에서 생활하는데 노인일자리에 참여하기에는 몸이 쇠약해져 형편이 나아지게 할 뾰족한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 경로당 소속 박영철(80), 김정순(여‧76) 부부도 사정은 마찬가지. 두 명의 자녀와 함께 국적을 회복했지만 자식들이 일용직 근로자로 전전하고 있고 부부 또한 각자 앞으로 나오는 16만원의 기초연금 밖에 수입이 없어 25만원의 월세를 내고 나면 수중에 생활비가 얼마 남지 않는 상황이다. 박 어르신은 “경로당 회원 대부분이 마땅한 수입이 없고 기초생활수급자도 몇몇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생활의 활력을 찾는 곳이 바로 경로당이다. 경로당에서 제공하는 건강체조 등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회원들이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희망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날도 20여명의 회원들은 청소를 하기 전까지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며 대화를 나눴고 청소를 하면서도 틈틈이 서로를 격려하며 일을 마쳤다.
일각에서는 귀한 동포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일반 회원들을 배척하리란 우려가 제기됐다. 확인 결과 8곳의 귀한 동포 경로당에는 국적 회복 어르신 외에 일반 회원은 한명도 없었다. 또 이들 중 파벌을 형성해 서로 배척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다.
한 지회 관계자는 “일부 귀한동포 경로당은 텃세가 심한 편이고 파벌이 갈려 고소‧고발 사건도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귀한 동포 노인들은 꾸준히 한국 사회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권영주(80) 회장은 인생의 80%를 외국에서 보내 문화 차이로 인해 폐쇄적일 수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타 경로당과 교류가 적고 또 이를 돕기 위한 지자체의 도움도 거의 없어 고립되는 측면이 있다고 항변했다.
권 회장은 “다른 한국 노인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회원들이 많지만 각자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쉽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자체 차원의 교류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일부 경로당에서는 귀한동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적응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충남 천안 청수2단지 버들마을아파트경로당이다. 이곳은 회원 45명 중 70%가 넘는 33명이 사할린에서 살다온 평균연령 70대의 귀한 동포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2010년 대한적십자사의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을 통해 천안에 이주한 이들은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한글을 쓰지 못하고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낯설었다. 하지만 채희두(70) 경로당 회장을 비롯한 기존 회원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한글․한문 및 서예교육을 시작하며 마음을 열어나갔고 현재는 회원들과 자연스레 섞이며 경로당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5월부터는 이들과 함께 400여 평의 공동영농텃밭을 운영하여 고추‧참깨‧들깨‧콩 등을 수확해 판매했고 1000만원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채 회장은 “사소한 갈등이 있더라도 대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면서 출신 지역 상관없이 한 가족이 되고 있다”면서 “이들이 적응하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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