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첩보전의 시대, 구식 스파이가 사는 법
첨단 첩보전의 시대, 구식 스파이가 사는 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5.11.20 14:17
  • 호수 4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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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24번째 이야기 ‘스펙터’
▲ ‘007 카지노로얄’ 이후 4편 연속 본드역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는 사상 최고의 007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50여년간 사랑받는 시리즈 영화… 다니엘 크레이그 열연
로마‧알프스‧멕시코시티 절경 속에서 펼치는 액션 일품

‘죽은 자가 살아서 돌아오다’라는 문구가 사라지고 스크린엔 ‘죽은 자들의 날’을 즐기는 멕시코시티(멕시코의 수도) 시민들이 등장한다.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해골 가면을 쓴 이들은 경쾌한 춤을 추며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의 명복을 기렸다. 이때 카메라가 축제에는 관심 없는 듯 행동하는 한 남녀를 쫓는다. 춤추는 무리를 뒤로한 채 어딘가로 유유히 향하던 남녀는 한 호텔로 들어간다. 여자가 가면과 외투를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을 때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사건이 발생한다. 남자가 최신 저격총을 들고 창문 밖으로 나간 것이다. “곧 돌아올게”라는 매혹적인 대사와 함께 스크린에 등장한 이는 007 제임스 본드다.
영국이 낳은 최고의 스파이 캐릭터 007이 24번째 영화로 돌아왔다. 제임스 본드는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이 1952년 발표한 작품에 나오는 가상의 영국 첩보원이다. 007 영화 시리즈는 1962년 개봉한 ‘007 살인번호’ 이후 50여 년간 이어지고 있다.
007은 본드의 첩보원명으로 ‘00’은 영국 비밀 정보국인 엠아이식스(MI6)에서 허가해 준 살인면허를 뜻한다. ‘7’은 살인면허를 가진 일곱 번째 요원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숀 코네리(85)를 비롯한 5명이 본드 역을 거쳐 갔고 21번째 작품부터 다니엘 크레이그가 맡아 ‘사상 최고의 007’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신작에서는 사상 최악의 악당과 대결을 펼치는 007의 활약상을 다룬다. 폭발 테러가 끊임없이 일어나자 영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CCTV 등을 통한 감시 정보를 공유하는 협약을 맺는다. 이에 잠입수사를 통해 적을 찾아내 징벌하는 본드식의 고전적인 첩보전은 쓸모 없어지고, MI6는 해체 위기에 놓인다. 한편,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분)는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암호를 추적하던 중 악명 높은 조직 ‘스펙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스펙터(SPECTRE)는 첩보와 테러, 복수와 강탈을 하는 조직(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tion)의 약자로 각국 정부에 심어놓은 조직원들을 활용해 마약과 매춘, 테러와 암살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최악의 범죄조직이다. 본드는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지만 MI6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 본드는 큰 결단을 내리고 최후의 일전을 펼치기 위해 적의 본거지로 향한다.
전작의 큰 흥행으로 고무된 제작진은 이번 작품에서 좀더 과감한 투자를 함으로써 화려한 영상미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특히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멕시코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촬영한 다양한 도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초반 멕시코시티의 광장을 메운 수만 명의 인파를 비롯, 이탈리아 로마의 고풍스러운 골목길과 고즈넉한 건물들, 오스트리아의 새하얀 설원 등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이 도시들에서 펼쳐지는 본드의 액션은 이 영화의 백미. ‘007 카지노 로얄’부터 4편 연속 본드로 열연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액션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헬기와 경비행기를 타고 펼치는 공중액션은 이 영화에서 놓쳐선 안 될 장면들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공중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헬리콥터에서 실감나는 액션을 선보인다. 수만 명의 사람들 사이로 헬리콥터가 추락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긴장감을 높인다. 또 오스트리아에서 ‘본드걸’ 스완을 구출하기 위해 경비행기를 이용한 액션을 선보이는데 이 또한 화려하다. 비행기의 양 날개가 나무에 잘린 상태에서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듯 곡예를 펼치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외에도 로마의 아름다운 거리를 빠른 스피드로 누비는 자동차 레이싱 장면과 달리는 기차에서 벌이는 격렬한 격투신도 흥미롭다.
007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첨단기술이 집약된 장비들인데 이번 작품에서도 각종 무기를 장착한 방탄차량, 폭탄이 장착된 시계 등이 등장하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영화는 국가가 CCTV 등 감시 장비를 통해 얻은 정보로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관객에게 질문한다. 감시 장비의 발달로 해결된 범죄는 확실히 많아지고 있다.
이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 ‘뺑소니 사망 사건 검거율’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1월부터 10월까지 발생한 뺑소니 사망 125건의 피의자가 전원 검거됐다. CCTV의 증가와 자동차 블랙박스의 보편화로 인해 이러한 성과가 가능했다. 반면 과한 감시로 인해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영화는 본드의 화려한 액션 뒤에 이러한 메시지를 숨겨두고 있다. 범죄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감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극장을 나온 후 한번 쯤 생각해보게 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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