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화집 보며 화가 꿈 키운 1916년생 두 ‘절친’
함께 화집 보며 화가 꿈 키운 1916년생 두 ‘절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3.25 15:27
  • 호수 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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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이중섭은 회고전… 생존한 친구 김병기는 ‘백세청풍’전

서울미술관 이중섭 전, 낙찰가 35억원 기록한 ‘황소’ 등 소개
가나아트센터 김병기 전, 신작 등 미공개작 통해 작품세계 조명

▲ 김병기의 ‘자화상’의 모습.

올해 만 100세가 된 김병기의 어린 시절 집에는 화가였던 아버지(김찬영, 1889~1960)가 일본과 영국에서 들여온 서양 미술잡지와 각종 화구로 가득했다. 그에겐 이 공간에서 함께 놀던 단짝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양화를 보면서 미술가의 꿈을 함께 키웠다. 잠시 떨어져 지내다 도쿄 사립문화학원에서 재회한 두 친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화가단에 합류해 전쟁터를 떠돌며 아픔을 나누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얼마 뒤 단짝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두 사람의 우정은 계속됐다. 김병기와 ‘황소’로 유명한 이중섭(1916~1956) 이야기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중섭과 그의 절친으로 알려진 추상화가 김병기의 100세 기념 전시회가 나란히 열리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먼저 한때 국내 최고가 미술품의 지위를 유지했던 ‘황소’를 볼 수 있는 ‘이중섭은 죽었다’ 전은 오는 5월 29까지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이중섭의 묘지 사진으로 시작하는 이번 전시에선 그의 작품을 역시대순으로 배치해 전시제목과는 역설적으로 그가 살아 돌아온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총 10개 공간을 드라마 세트장처럼 구성해 그림을 그릴 당시 이중섭의 심정도 간접체험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중 ‘대구 성가병원, 서울 수도육군병원, 서울 성 베드루 신경정신과 병원’ 공간에서는 이중섭이 대구에서 개최한 전시회의 실패 이후 병원을 전전하며 남긴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 대표작이 ‘피 묻은 소’와 ‘싸우는 소’다. 두 작품에서는 소의 격렬한 몸부림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슬픔에 젖은 소의 두 눈이 인상적으로 묘사돼 있는데 이는 이중섭이 느낀 분노와 슬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걸작 ‘황소’는 ‘통영 항남3길 25번지’에서 만날 수 있다. 통영 시절은 이중섭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로, 일본에서 가족과 재회한 후 얻은 기쁨과 열심히 작업에 매진해 가족을 다시 만나야겠다는 각오와 희망이 가득한 때였다. 이 당시 그린 ‘황소’는 금방이라도 들이받을 듯 고개를 수그린 황소를 순간적으로 포착한 작품으로 활력이 넘치는 붓터치와 과감한 묘사가 돋보인다.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이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6000만원에 낙찰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대구, 경복 여관 2층 9호실’에서는 이중섭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개인전을 열고도 작품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가지고 있던 그림을 불태우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등 자포자기의 모습을 보이며 지인들의 근심을 샀다. ‘자화상’은 이 당시 이중섭이 지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린 것으로 밝은 모습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의 ‘담배딱지 그림’인 은지화는 ‘부산, 르네쌍스 다방’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그만의 독창적 양식인 은지화는 20세기 한국 화가들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3점이 소장돼 있기도 하다.
김병기의 개인전은 서울미술관에서 불과 5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오는 5월 1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백세청풍:바람이 일어나다’ 전에서는 김병기가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새롭게 그린 신작과 1970년대부터 작업한 미공개작 등 5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인 김병기는 한국 화단의 ‘살아있는 20세기 역사’로 불린다. 그는 김환기, 이중섭 등과 함께 1950~60년대 국내 화단에서 미술운동과 비평활동을 하다 1965년 홀연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규모 회고전을 계기로 지난해 영구 귀국했고, 100세를 넘긴 나이에도 계속 신작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세계 미술계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명이며 20세기 초 한국과 일본의 문화사를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이다.
그의 작품은 화면에 굵게 그어진 가로, 세로, 대각의 직선 사이로 드러나는 형태와 색채가 특징이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선들로 화면에 평면적 성격을 부여하는 동시에 선들의 교차로 만들어지는 역삼각형이나 미묘한 형태들이 3차원적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은 이런 공간감과 빠른 붓자국, 물감 흔적, 얼룩, 여백 등이 만나면서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전시에서 눈여겨볼 작품은 ‘바람이 일어나다’이다. 그가 월남하면서 되뇌었던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명시 ‘해변묘지’의 첫 구절을 제목으로 인용한 작품이다. ‘바람이 일어나다’는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역동적인 붓 터치가 돋보인다. 마치 검은 바람이 위로 치솟는 듯한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검은 바탕과 적색 테두리가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자화상’ 역시 검은 배경과 상하로 기다랗게 내리 그은 빨강색 띠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인물의 형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까만 바탕에 그려진 선들에서 김병기의 파란만장한 삶의 기운이 느껴지는 독특한 작품이다.

▲ 35억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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