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과 중앙미술대상 휩쓴 채색화의 거목
국전과 중앙미술대상 휩쓴 채색화의 거목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4.01 13:52
  • 호수 5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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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이숙자 ‘초록빛 환영’ 전
▲ 천경자, 김기창 등에게서 미술을 배운 이숙자는 국전과 중앙미술대상을 한해에 동시에 휩쓸며 채색화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은 너비가 15m의 달하는 그의 대표작 ‘백두산’의 모습.

왜색 비판 속에서도 보리밭 등 한국적인 정서 소재로 묵묵히 작업
15m 대형 화폭에 담은 ‘백두산’ 등 통해 민화의 아름다움 전달

고구려 벽화에서 시작된 채색화(탱화‧민화‧무속화 등)는 주류 화단에서 배척돼 왔다. 조선시대에는 품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시됐고, 광복 후에는 일본회화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왜색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채색화 작가들의 상당수가 수묵화로 전향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채색화가 지니고 있는 서민적이고 민족적인 전통성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1980년 제3회 중앙미술대전 대상과 제29회 국전 대상을 동시에 수상한 이숙자(74)가 있다.
한국채색화의 맥을 잇는 대표 화백 이숙자의 화업을 조명하는 ‘초록빛 환영’ 전이 오는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채색화 작가의 개인전이라 더 주목받고 있다.
전시에선 민예품, 보리밭, 한글, 백두산, 소 등 한국적인 정서를 대표하는 소재로 그린 작품들과 원죄를 짓기 이전의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이브’ 시리즈 등 60여점이 소개된다.

▲ 2003년작 ‘황맥벌판 IV’

고려대에서 동양화를 가르친 이숙자는 천경자(1924~2015), 김기창(1913 ~2001), 박생광(1904~1985)과 같은 근대 한국채색화의 거장들에게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채색을 사용해서 그린 채색화는 정통성이 인정된 이후에도 한국화의 전반적인 침체로 조명 받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이숙자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초록빛 ‘보리밭’을 그리면서 그만의 독자성을 찾았다. 한때 ‘보리밭 화가’라는 틀에 갇힌 것 같아 이 꼬리표를 부정한 시기도 있었지만 이를 넘어서며 현재까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운 ‘백두산’이 맨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너비가 15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이숙자가 ‘한국의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붓을 처음 댄 건 1992년이었다. 막연하게 백두산을 상상하며 그리기 시작을 했지만 작업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다 1999년 직접 백두산을 보고 난 후에야 완성됐다. 석양이 지는 백두산 천지의 웅장한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이숙자는 민족의 혼을 표현하고 있다.
‘백두산’을 지나면 왜색시비를 겪던 1970~80년대 이숙자가 고집스럽게 그려낸 채색화를 만날 수 있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작업’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3명의 농촌 여인이 쪼그리고 앉아 모내기 하는 모습을 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처럼 노동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전시의 세 번째 공간인 ‘보리밭과 소’에서는 이숙자에게 ‘보리밭 화가’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1977년 초록빛으로 물든 보리밭을 본 그는 강인한 생명력과 한의 정서를 동시에 느꼈고 자신의 화폭에 이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눈여겨볼 작품은 ‘황맥벌판’ 시리즈다. 총 4점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수확기를 앞두고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포착한 작품으로 자연의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198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이숙자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여성 누드화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가부장사회에서의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과는 달리 당당하고 도발적이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이브’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브’는 수치심과 출산의 고통을 알기 이전, 즉 원죄 이전 낙원에서의 자유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숙자는 이를 작품에 차용해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성을 드러낸다. 이 시기 대표작으론 ‘이브의 보리밭 89’가 꼽힌다. 보리밭에 전라의 여성이 누워 있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전시장 마지막은 한글과 소나무 등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눈여겨볼 작품은 ‘석보상절-뒤풀이’다. 1999년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해가는 한국의 역동적인 정서를 담아낸 작품으로 보리밭에서 신명나게 탈춤판을 벌이는 두 인물을 통해 한국인들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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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삼춘 2016-04-13 07:40:39
국립현대미술관 이숙자 '초록빛환영'전을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