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에 소개된 화제의 인물들, 그들은 지금…
백세시대에 소개된 화제의 인물들, 그들은 지금…
  • 이상연 기자
  • 승인 2016.04.08 14:36
  • 호수 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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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는 2006년 창간 후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 속 화제의 인물을 소개해왔다. 그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본지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그간 만났던 인물들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92세 연령에도 ‘法醫탐정론’ 연구, 언론에 게재
1호 법의학자 문국진 교수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법의학의 살아있는 ‘역사’다. 1955년부터 15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틀을 세웠고,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했다.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후엔 26년 간 50권이 넘는 법의학 관련 서적을 저술했다.
이런 그의 열정은 92세의 나이에도 현재진행형이다. 3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378호) 후엔 ‘법의탐정론’ 연구에 매진 중이다. 법의학으로 예술 작품 속에 숨겨진 사건의 비밀, 유명 예술가들의 불명확한 사인 등을 규명하는 것을 말한다.
문국진 교수는 “사람에게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권리인데, 법의학은 죽은 사람의 권리를 회복시키는 학문”이라며 “은퇴 후 미술작품을 많이 접하다보니 자연스레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인권 침해, 나아가 작가의 인권침해 여부에 관심이 가 이런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신문·잡지 등에 ‘법의탐정론’ 관련 연재물을 게재 중이다. 비극 ‘햄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인, 부친을 살해한 화가가 병원에 갇혀 그린 그림, 일본 에도시대 화가 이토 자쿠추의 닭 그림 등에 반영된 작가의 심리상태 등이 주 내용이다.
그는 아직도 이처럼 법의학에 관한 열정을 끊임없이 지펴나간다. 즐거워서 하기도 하지만, 법의학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이 크다.
아직 우리나라는 법의학 관련 저변이 부족한 편이다. 국내에서 1년간 발생하는 변사사건만 2만5000건이 넘는다. 그러나 이를 다루는 국과수 법의관은 30명이 안 된다. 미국의 경우 제도적으로 각 주마다 ‘법의관’을 둬 주에서 일어나는 변사사건의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다.
문 교수는 “한국은 법의학의 수준은 높으나 아직 법의관 제도가 정착되지 않았고, 국과수와 검찰이 분리되지 않아 빠른 사건 처리에 어려움이 따른다”며 “희망적인 부분은 제자들이 42개 의과대학 중 13곳에 법의학과를 만들고 법의학도를 육성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매스컴의 영향력에도 주목하고 있다. 2011년 학회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당시 만난 여의사 5명이 드라마 ‘싸인’을 보고 법의관의 꿈을 품었다고 했다. 이후 학회에 법의학 발전에 공헌한 언론 및 문화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상을 제정하자고 건의했다. 이를 계기로 대한법의학회는 2013년부터 그의 아호를 딴 ‘도상(度想) 법의문화상’을 수여하고 있다.
문 교수는 “앞으로도 방송출연, 서적 출간 등 활동을 통해 법의학을 알리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후 그는 다시 서재로 들어갔다. 수많은 서적으로 둘러싸인 책상 위에도 법의학 관련 서적과 자료가 즐비했다. “미술작품이 무궁무진 하듯, 내 연구도 끝나려면 멀었다”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꽃무릇 연정’ 등 시집 네권 내… 수필가로도 등단
본지 시 공모전서 최우수상 받은 서상옥 시인

고려의 무사 서 희 장군 집안에서 문사가 태어났다. 74세에 시로 문단에 등단한 서상옥(81) 어르신의 이야기다. 그는 2008년 2월 본지 시 창작공모전에 ‘선운산 계곡’을 출품, 최우수작품으로 선정됐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 2시간 가량 집필 관련 공부를 한다. 신문과 인터넷을 살핀 뒤 필요한 부분은 메모를 해둔다. 이는 학창시절에 문학작품들을 탐독하며 유명한 사상가들의 어록을 꼭 메모하던 습관이 이어진 것이다.
또한 70년 넘게 일기를 쓰고 있다. 여기엔 시, 독후감을 비롯해 그날의 특별한 일들이 낱낱이 정리된다. 이 모든 것들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사실 그는 문학과는 조금 거리가 먼 원광대 법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쌓인 풍부한 감성 탓인지, 법조계가 아닌 교육계에 발을 들였다. 40년 가까이 후진양성에 진력하다 중학교 교감으로 퇴직한 뒤론 오랜 취미인 문학활동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 세월 홀로 쌓은 문학적 내공은 곧 두각을 나타냈다. 2009년 ‘꽃무릇 연정’ ‘낙엽지는 소리’ ‘영혼의 노래’ 등 3편의 시를 통해 월간 ‘한국시’에 당선됐다. 이듬해엔 계간 ‘대한문학’ 겨울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오드리 햅번’ 등 2편의 수필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4년엔 수필 ‘옛날은 가고 없어도’로 월간 ‘한비문학’ 수필 부문 대상을 탔다.
이후 그는 매년 1권씩의 서적을 출간했다. ‘꽃무릇 연정’ ‘빈지문에 서성이다’ ‘파도소리길’ ‘아득한 별들의 고향’ 등 4권의 시집, ‘그림보다 의미 있는 이야기’ ‘옛날은 가고 없어도’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등 3권의 수필집이 세상에 나왔다.
서상옥 어르신은 “지난해 팔순기념회를 겸해 열린 ‘아득한 별들의 고향’ 출간기념회는 다른 기념회보다 특별하게 다가왔다”며 “팔순의 나이에도 건강하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회상했다.
1남5녀의 자녀들은 힘을 모아 고향 선산에 시비(詩碑)를 세워줬다. 그 비석엔 대표작 ‘꽃무릇 연정’이 새겨져 있다.
이렇게 오랜 취미를 깊이 즐기고 있는 그는 자신의 열정이 식지 않길 바란다.
“다작이 아닌 심도 있는 작품 집필에 초점을 맞춰 계속 창작활동에 정진하는 것이 여생의 목표입니다.”


백보드 테니스장 증설 앞장… 여성코트도 생겨
진규항 어르신백보드테니스회장

경기 의정부시 중랑천 배수펌프장 부근엔 ‘백보드 테니스장’이 있다. 초보자들이 공을 벽에 치며 테니스를 즐길 수 있도록 배수펌프장 벽면과 유휴지를 정비해 마련된 공간이다. 이는 진규항(80) 어르신이 시에 주민 300여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함으로써 조성됐다.
이후 진 어르신은 어르신백보드테니스회를 조직, 시니어들에게 테니스를 전파하고 있다. 이 내용은 본지 405호를 통해 보도됐다. 지난 4월 1일 기자가 2년만에 다시 찾은 코트는 15m 더 확장돼 있었다. 예전보다 방문객이 늘어난 탓이다.
진규항 회장은 “다른 지역에도 소문이 나 하루 평균 방문객이 200~300명에 달해 시에 건의해 코트를 늘렸다”며 “앞으론 지역 주민들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을 위한 백보드 테니스장 증설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벌써 2개의 후보지에 대한 물색을 마쳤다. 중랑천변의 지류인 민락동 아파트 부근, 외곽순환도로가 지나는 중랑천변 유휴지 등이다. 의정부와 가깝고 자전거도로로 오갈 수 있어 접근성이 좋은 장소들이다.
진 회장은 “아직 정식적인 건의 절차는 밟지 않았지만, 곧 주민들의 서명을 담아 탄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뿐 아니라 올해 6월엔 의정부경전철 발곡역 아래에 여성전용 코트도 들어선다. 20m 규모로 기존 백보드테니스장과 가운데 중랑천변을 두고 마주보는 곳이다. 코트 위 역사가 해를 막아줘 최적의 자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진 회장은 다른 클럽의 회장이기도 하다. 10년 넘게 몸담은 ‘맑은물어르신클럽’은 백보드테니스장의 상위리그 격이다. 두각을 보이는 시니어를 이 클럽에 편입시켜 정식 코트에 설 수 있도록 한다.
맑은물어르신이클럽이 속한 테니스장 코트도 그의 건의 덕분에 4개면(기존 3개면)으로 증설됐다. 올해 말엔 ‘클레이코트’(흙으로 된 코트) 위에 관리가 수월하고 폭신한 인조잔디가 깔릴 예정이다.
이처럼 시니어 테니스 저변확대에 매진하는 진규항 회장은 올해 팔순이 됐다. 47세에 처음 라켓을 잡은 뒤 30년이 넘었다. 그는 이제부터 어깨의 짐을 하나 둘 내려놓을 생각이다. 올해를 끝으로 어르신백보드테니스회 회장직을 놓는다. 대신 선수로서 우승 경력을 쌓는데 전념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전국 이순 테니스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의정부 실내테니스관 준공 기념 ‘시니어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75세부 우승을 차지하며 그가 속한 한국A팀의 종합 우승을 견인했다. 과거 데이비스컵 출전자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얻은 결과였다.
진 회장은 “지난해 선수로서 나의 가능성을 재발견했다”며 “팔순을 맞은 내 인생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글·사진=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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