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을 노인복지의 허브로 활성화 하자
경로당을 노인복지의 허브로 활성화 하자
  •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장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16.04.29 13:26
  • 호수 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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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로당은 옛날 사랑방의 전통을 이어온 곳이다. 전통사회의 사랑방은 동네 어르신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모여서 동네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소일하며 놀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통 농경사회의 촌락은 씨족집단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네사랑방은 집안 어른들이 모이는 경우가 많았고, 집안의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을 모시고 돌보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랑채의 어르신들이 모인 곳이라고 해서 사랑방이라는 이름도 붙여지게 됐다.
이 전통사회의 사랑방이 오늘날 경로당 또는 노인정으로 바뀌었다. 지난 반세기 경제성장으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크게 진전되면서 도시지역에도 수많은 경로당이 생겨났다. 새로운 도시에서 동네가 생기면 경로당이 만들어졌고,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마다 경로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농촌지역은 인구이동으로 젊은 층이 대부분 도시지역으로 빠져 나갔지만 남아 있는 노인들이 모이는 경로당은 여전히 존재하거나 마을회관 형태로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해서 현재 우리나라에는 6만5000여개소의 경로당이 존재한다. 이들 경로당에 등록한 노인만 해도 300만 명에 이른다. 65세 이상 전체 노인인구의 거의 절반 가까운 수치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노인들이 모여서 놀고 생활하는 대표적인 시설이 바로 경로당인 셈이다.
필자는 지난 40년 동안 공무원으로 노인복지정책 일을 하기도 하고, 대학교수로 노인복지연구 일을 하기도 하고, 현장 실천가로 노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기도 하면서 우리나라 경로당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전통적 노인 사랑방인 경로당을 살리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노인복지의 일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999년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일할 때에는 전국 40개 지역에서 노인복지관, 사회복지관과 그 인근 지역 경로당을 연계해 노인복지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시범사업도 시작해 봤다. 지금도 이 시범사업이 전국 여러 곳에서 지속되고 있다.
경로당을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일선전달체계로 활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완성도는 충분하지 못하다. 물론 개별 경로당의 경우 자체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개발하여 노인복지서비스 기능을 잘 수행하는 곳도 많고, 지역 노인복지관들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잘 수행하는 시설도 많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아직도 선진적 프로그램 없이 전통적 운영형태를 유지하는 경로당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회복지분야도 지난 40년 동안 크게 발전해 선진복지국가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 멀지않은 장래 우리나라도 선진복지사회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한다.
이와 같은 국가발전단계에 발맞춰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적 사랑방인 경로당을 현대적 노인복지의 허브로 활성화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중요한 초점은 개별 경로당을 개별 시설로 두지 말고 지역복지 네트워크의 허브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사회복지서비스를 담당하는 각종 기관, 조직, 시설과 연계하여 경로당을 노인복지의 일선거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침 지금 정부에서는 사회복지의 일선전달체계로서 읍·면·동 사무소를 복지허브로 만들어가고 있다. 민간부문에서도 지역사회마다 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등 사회복지시설이 크게 발달하고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을 위한 자원봉사, 기업사회공헌 등 인적, 물적 나눔 자원도 크게 발전하고 있다. 이들 지역사회의 공공, 민간 사회복지자원을 경로당과 연계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전통적 사랑방 기능을 현대화하는 지름길이다. 이 서비스네트워크 안에서 전문적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경로당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적합한 노인스포츠와 같은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역복지가 한창 꽃 피는 지금 시점에서 경로당을 노인복지의 허브로 활성화하면 우리나라 경로당은 전통사회의 어르신 사랑방 기능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현대적 노인복지의 보금자리로 발전하는 세계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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