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인들이 ‘어디 가는 버스냐’고 묻는 이유
[기고]노인들이 ‘어디 가는 버스냐’고 묻는 이유
  • 이철규 명예기자 / 강원 양양
  • 승인 2016.04.29 13:27
  • 호수 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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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대 어르신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참화를 겪어야 했다. 주린 배를 채우기도 바빴던 그 시절엔 배움의 전당인 학교도 변변치 않았다. 이로 인해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었던 많은 어르신들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군에 입대하면 한글을 모르는 장병이 많았다. 훈련소에 공민학교 과정을 설치해 훈련병들은 한글 교육을 이수하고 자대 배치를 받곤 했다.
당시 훈련 초창기만 해도 한글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일부 전우가 편지를 써주거나 가족에게 온 서신을 읽어줬다. 어느 훈련병은 편지에 집, 어머니 그리고 굴뚝을 그려 보냈다.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의미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오 남매의 막내인 필자는 남존여비사상이 남아 있던 시절 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중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의무교육이 아니었기에 부모님들은 자식을 선택해 학교에 보냈다. 장남인 형님은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누님들은 딸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문턱까지만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려운 형편의 가정에서는 대부분의 딸을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여성 어르신들의 문맹률이 높은 이유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어르신들이 다가와 오는 버스마다 목적지가 어디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노안으로 시력이 흐려져서 묻는 줄 알았다. 필자가 나이를 먹고 나서야 읽지 못해서 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맹이 준 물음이었던 것이다. 수십 년을 살며 한글을 몰라 불편을 겪으면서도 내색해지 않고 자녀들을 뒷바라지한 그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필자는 최근 평생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강원 양양노인복지관서 전자기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컴퓨터 다루는 법부터 사진 촬영 기법까지 배우면서 삶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복지관을 드나들다가 우연히 문해교실을 다니는 어르신들의 편지를 접하게 됐다. 갓 한글을 깨우친 한 어르신은 ‘편지’라는 글을 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노인복지관이 생겨 저희 한글공부 도와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바쁘신데도 저희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쳐주신 것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어르신은 ‘고마운 선생님’이란 글을 남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낙산사에서 양양복지관을 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선생님하고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많은 구경을 했어요.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어렵게 가르치는데 우리 선생님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어요. 그날은 선물도 많이 받고 점심도 맛있게 먹었어요.”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어색하고 내용도 단순하지만 자신들이 느낀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두 어르신뿐만 아니라 문해교실 어르신들이 쓴 글에는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우리나라 발전의 주춧돌을 놓으신 그분들이 오히려 감사인사를 받아야 함에도 말이다. 늦게나마 한글을 익히느라 고생한 어르신들에게 대표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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