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의 경로당은 무사한가”
“거제의 경로당은 무사한가”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4.29 13:30
  • 호수 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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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줄어들 것 같아… 대안 마련에 노인 역할 기대돼

‘거제의 눈물’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조선소에서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생계가 막막해 눈물이 난다는 얘기다. 거제는 한때 길 가는 강아지도 입에 1만원권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자도시’였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빅3 조선업체의 호황 덕분에 주부들은 명품 브랜드를 몸에 걸치는 등 호사를 부렸다. 거제의 노인들은 낮은 수당의 일자리에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 IMF(외환위기) 때도 정상적으로 달러가 들어와 외풍을 거의 타지 않았으며 2008년 금융위기도 탈 없이 넘겼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해양플랜트, LNG선 등의 수주가 막히자 조선소마다 매출이 급감하고 부채가 수조원씩 늘어 수천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에만 1만 5000명이 조선업계를 떠났고 대우해양조선은 앞으로도 3000명을 더 내보낸다는 계획이다. 직장을 잃은 근로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생계형 범죄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대표 A씨는 “자금 압박으로 직원들에게 임금을 제때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지난 4월21일, 조선업체에서 실직한 30대 남자는 이웃집 여대생을 흉기로 위협하고 직불카드를 빼앗아 90만원을 인출해 가로챈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거제의 경로당은 안전한가. 거제의 인구는 26만명이고 그 중 노인은 12만여명이다. 박문수(83) 거제시지회장에게 전화를 돌렸다. 박 지회장은 거제의 사정에 대해 “3년 전부터 지역경제가 안 좋다는 말이 들리더니만 올해는 정말 (경제사정이)안 좋다는 느낌이 확 온다. 모여 앉아 걱정들을 많이 한다”고 대답했다. ‘혹시 경로당은 별일 없는가’라고 묻자 박 지회장은 “우리 지회 300여개 경로당은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후원이 좀 줄어들 것 같다”며 “선진지 견학을 갈 때 조선소 버스를 빌렸는데 요즘은 버스 2대가 필요하다고 하면 한 대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와 사정이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거제시지회 경로당은 조선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소통하고 있다. 원영권 거제시 동부면 산양남자경로당 회장은 “남자회원들만 30여명 있는 우리 경로당은 근처의 삼성중공업과 자매결연을 맺고 가깝게 지낸다”며 “조선소 직원들이 1년에 2차례 경로당을 방문해 기체조, 뜸 등 건강관리와 연예인 초청공연 등을 해주었는데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조선소에 다니는 자녀를 둔 노인들의 걱정도 태산이다. 한 경로당 회원은 “협력업체에 다니고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불안 초조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무더기 구조조정을 당하는 마당에 노인일자리 사정은 괜찮을까. 전경화 거제시지회 취업센터장에게 물었더니 다행히 ‘어려움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 센터장은 “노인일자리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달라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매달 9명에게 일자리를 연결시켜준다는 목표를 두고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거제의 노인 일자리는 여성의 경우 굴을 따거나 멸치를 말려 가공하는 작업이 주이고 남성은 경비이다. 굴 따기 일자리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성수기이다. 이 기간에는 일손이 모자라 여성 노인의 경우 한달 300만원까지 수입을 올린다고. 안전 관계로 조선소에는 노인 일자리가 없다.
거제 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불안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요즘 사회를 책임지는 노인들의 역할이 새삼 요구된다. 노인들이 청년층을 위로하고 침체된 도시 분위기를 바꾸고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지혜와 대안을 보여줄 때이다. 그런 점에서 거제시지회 일운 노인대학장을 지낸 진영수 어르신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매스컴에서 너무 과장되게 보도하는 측면이 있다. 거제 시민들이여, 기죽지 마라.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자연이 아름다운 거제가 관광산업 쪽으로 눈을 돌리면 더 좋은 도시로 태어날 수 있다. 일본의 나가사키가 미쓰비시조선소의 몰락으로 죽은 도시가 됐다가 관광산업으로 새롭게 태어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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