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면 생각나는‘회심곡’
오월이면 생각나는‘회심곡’
  • 이동순
  • 승인 2016.05.06 15:24
  • 호수 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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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봄꽃들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서로 앞다투어 피어나더니 화려하던 모란꽃도 향기의 추억만 은은히 남기고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오월의 눈부신 커튼이 일렁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란 말도 있지만 ‘백화쟁발(百花爭發)’과 ‘천리유광(千里有光)’이란 멋스런 옛 글귀가 오늘따라 더욱 우리가슴을 맑고 그윽한 행복감으로 채웁니다.
오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 날, 스승의 날 등이 있어서 인간의 도리, 삶의 지혜 따위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는 달입니다. 코앞의 삶에 매달려 사느라 기본 도리조차 제대로 못 갖추고 헤매는 우리들이기에 오월은 갈등, 연민, 죄책감, 후회 등을 비롯해 한층 가슴 속을 휘몰아치는 마음의 작용들로 바쁜 시간이 됩니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살뜰히도 생각나는 노래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회심곡(回心曲)’입니다.
원래 불교음악으로 시작된 이 노래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1520~1604)이 가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범패의 깊은 뜻을 대중이 잘 알아듣도록 우리말 사설을 붙여 재(齋)가 끝날 무렵 부르는 노래를 화청(和請)이라 하는데, ‘회심곡’은 화청노래로 만들어졌습니다. 북이나 목탁을 치면서 부르는 구성진 가락이 워낙 절절하고 애처로워 듣는 이로 하여금 부모에 대한 효(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습니다.
가락의 스타일이 경기민요와 부합되는 요소가 많아서 명창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모든 사람은 석가여래의 공덕으로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금생에서 부처를 믿고 좋은 업을 많이 지으면 극락세계로 가고, 반대로 악업을 짓게 되면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노래 전체가 흘러간 유소년시절의 애달픈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 은혜와 그 소중함을 애틋하게 일깨워주는 효과로 다가오는데요. 이 노래 사설에서 가장 가슴이 아리고 절절하게 사무치는 부분은 바로 다음 대목입니다.
진자리는 인자하신 어머님이 누우시고/ 마른자리는 아기를 뉘며/ 음식이라도 맛을 보고/ 쓰디 쓴 것은 어머님이 잡수시고/ 달디 단 것은 아기를 먹여/ 오뉴월이라 짧은 밤에/ 모기 빈대 각다귀 뜯을세라/ 곤곤하신 잠을 못다 주무시고/ 다 떨어진 세살부채를 손에다 들고/ 왼갖 시름을 다 던지시고/ 허리 둥실 날려를 주시며….
6·25전쟁이 일어나고 북한군들이 파죽지세로 남하해내려 올 때 어머님께서는 저를 뱃속에 품고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몹시 위험한 형국이니 마을을 비우라는 소개령이 내려지자 아버님께서는 가족들을 이끌고 먼 곳의 산지기집으로 피난길을 떠났습니다. 어머님은 무거운 몸으로 그 높고 험한 산길을 걸어서 오르셨습니다. 피난지에 도착하자마자 곧 몸을 풀었는데, 그 난리 통에 산후조리인들 제대로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그때 얻은 병이 몇 달 뒤 고향집으로 돌아와서도 전혀 차도가 없자 어머님께서는 제가 첫돌이 채 되기도 전인 불과 10개월 무렵 때 이 한 많은 세상을 기어이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40대 중반의 홀아비서방님은 어찌하라고? 세상에 끼쳐놓은 병아리 같은 어린 새끼들은 다 어떻게 살라고?
아무튼 저희 집 가정사에는 말 못할 곡절과 사연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눈발처럼 쌓였답니다. 그 애잔한 이야기를 어찌 낱낱이 필설(筆舌)로 풀어낼 수 있으리오. 그 핏덩이가 어느 덧 세월이 흘러 회갑을 넘기고 이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한들 어머님에 대한 뼛골 사무치는 그리움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엔 들리지 않던 가락들이 새롭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회심곡’입니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의 열 가지 부모님 은혜를 자세하고도 실감나는 글귀로 풀어서 엮고 정리한 ‘회심곡’은 그리하여 이 세상 사람들에게 새롭게 되새기고 오늘의 삶을 바로잡게 하는 훌륭한 인생지침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난세월 이 ‘회심곡’을 잘 부르는 명창들은 많았습니다. 김옥심, 이은주, 안비취, 김영임 등의 노래가 들을 만합니다. 스님들로는 성공, 영인, 지우, 혜광, 원정, 선해, 운행, 묘정, 도비, 혜자, 백운, 월봉 등 여러 분들이 불렀습니다. 이 노래의 전곡(全曲)을 듣노라면 눈가에 촉촉한 것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립니다. 이럴 때는 하늘의 어머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시어 아들의 젖은 눈을 닦아주십니다. 오늘은 ‘회심곡’을 끝까지 제대로 한번 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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