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명확히 정해주는 부모 되어야
‘한계’를 명확히 정해주는 부모 되어야
  •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6.05.27 13:23
  • 호수 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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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노후 파산’에 대해 말을 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안락한 노후를 누려야 할 노년층이 빚에 쫓기다가 변제 능력을 상실하고 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는 급기야 ‘불효 파산’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까지 등장하고야 말았다.
지난 5월 16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법원은 오모(72) 어르신이 신청한 채무 면책 신청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카드명세서 내역이 수상쩍었기 때문이다. 카드대금 중에는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고가 진료비가 결제된 기록이 여러 개 있었고, 홈쇼핑이나 백화점,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물건을 산 흔적도 있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의심스럽던 상황은 어머니의 면담조사에 아들이 수입차를 몰고 나타나면서 분명해졌고, 결국 오모 어르신은 아들과 딸이 돈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빚을 대신 탕감하려 했음을 실토했다고 한다.
법원은 노모에게 빚을 떠넘긴 자녀들에게 카드빚을 반환하게 하고, 오모 어르신의 채무 면책 신청을 불허했다. 지나친 낭비 등으로 채무를 진 경우는 면책을 허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파산 원인이 되는 사실을 속이거나 감추고, 설명 의무를 위반한 것도 잘못이다.
문제는 이처럼 경제력도 없고 마음도 약한 부모를 이용하는 ‘불효 파산’이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차적으로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불효까지 저지르는 자녀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자녀의 일이라면 범죄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의 잘못된 자식 사랑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 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경기도 좋지 않고, 점점 살기가 힘들어져서?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부모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한마디로 자녀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이렇게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내가 자식들한테 의존한다고? 아, 뭘 모르시네. 난 자식한테 돈 한 푼 기대하지 않는다고요. 내가 도와주면 도와줬지.”
그러나 경제적 의존만이 의존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의존 못지않게 중요한 건 심리적인 의존이다. 특히 자녀와의 관계에서, 자신은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자녀를 계속 도와주고 싶어 한다면 그건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가 결혼한 후에도 계속 도움을 주고 개입하며 통제하려는 태도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자녀 중심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미이다.
특히 남성보다 오래 살면서도 경제나 건강, 가족 내 위치 등 여러 면에서 취약한 여성 어르신이 자녀들의 압력이나 횡포, 학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스럽다. 주변을 둘러보면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자식한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갈 곳이 없어서, 혹은 차마 자식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없어서 참고 사는 노인, 그러다가 폭력적인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자녀의 부당한 압력이나 횡포, 학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가 제아무리 소중한 가족이고 사랑하는 자녀라 할지라도 내가 주거나 나누고 싶지 않은 것을 요구할 때, 혹은 내 안전을 위협할 때는 분명하게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나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자식들에게 ‘예스’와 ‘노’를 분명히 하는 쿨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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