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 끝에 젊은이들도 어려운 에베레스트 등반 성공
사투 끝에 젊은이들도 어려운 에베레스트 등반 성공
  • 정재수
  • 승인 2007.07.16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버들이여! 우리도 할 수 있다!”

암 투병 아내 남겨 두고 등반 도전 ‘투혼’
마지막 관문서 위기… 죽음 무릎 쓰고 전진


지난 5월 18일 한국 산악계에 큰 획이 그어졌다. 60대 산악인들이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 등반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산악회가 지난해 9월, 엄격한 심사를 거쳐 8명의 실버원정대를 선발했고, 이들 가운데 김성봉(66) 대장과 이장우(63) 대원이 동남릉 루트를 따라 정상에 올랐다.

60대 이상 고령 산악인들로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를 구성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이들이 정상을 밟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더더욱 드물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오르는 혹독한 싸움. 김성봉 대장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김성봉 대장이 제4캠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해발 8000m에 가까운 제4캠프에 도착했을 때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총탄 처럼 날아드는 눈보라를 맞으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같이 올라간 이장우 대원과 조광현(67) 대원도 탈진상태에 빠져 있었다. 결국 조광현 대원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베이스 캠프에 무전을 날렸다. 더 이상 못가겠다고….”

정상까지는 겨우 300여m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던 베이스 캠프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숙의 끝에 제4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에베레스트 제4캠프에서 수면을 취한다는 것은 포기를 뜻했다. 8000m 고지에서 잠을 잘 경우 체력이 급속히 소진되기 때문이다.

“하룻밤을 자고 마음을 다시 추슬렀다. 이장우 대원과 다시 정상을 향하기로 결정했다. 그 때 배낭에 넣어갔던 인삼 팩 음료 8개 가운데 4개를 이장우 대원에게 건넸다. 마시고 힘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죽기 전 건네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암벽·빙벽등반 경험이 풍부한 김성봉 대장의 발걸음이 더 빨랐다. 갑자기 왼쪽 허벅지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김성봉 대장은 배낭에서 피켈(빙설로 뒤덮인 경사진 곳을 오를 때 사용하는 T자형 등반 도구)을 꺼내 다리를 북어 패듯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비몽사몽.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기계처럼 발걸음을 뗐다. 1m를 전진하는데 1분이 넘게 걸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음을 확인한 순간, 그 곳이 바로 정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니 발아래 온통 하얀 산들이 깔려 있었다. 정상에 올랐다는 실감이 났다. 나도 모르게 외쳤다. ‘지구촌 실버들이여! 우리는 지금도 할 수 있다!’ 울부짖듯 외친 소리가 셀파(등반을 돕는 현지인)의 무전기를 통해 베이스 캠프에 전해졌다. 하지만 담담했다. 등반 성공의 기쁨보다 내면의 자아를 꾸짖는 겸허한 목소리가 먼저, 더 크게 들렸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김성봉 대장은 남모를 고뇌가 있었다. 출발 한 달 전 쯤, 아내에게 설암(舌癌)이 발견됐다. 2월 중순 12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했다. 김 대장은 병석에 누워있는 아내를 남겨두고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자신이 포기한다면 실버원정대의 등반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절친한 친구는 절교를 선언했다. 다들 손가락질을 했다. 현지에 도착해서 매일 밤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참으로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러나 중도에 포기할 수 없었다. 현재 아내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잠시 접었던 생업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 모두 당시의 결정을 이해해 주고 있다.에베레스트는 인생의 또 다른 깊이를 가르쳐주었다. 73세가 됐을 때 다시 에베레스트에 올라 현재 71세로 기록된 세계 최고령 등반기록을 깨고 싶다.”

김성봉 대장은 에베레스트를 ‘죽은 산’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산이란. 바로 우리나라 금수강산이라고 했다. 높지 않아도 물과 흙과 바람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산, 그것이 살아있는 산이라고 말했다.

“산은 어머니다. 산은, 오르는 사람은 누구를 가리지 않고 포용한다. 산에 올라 쓰레기를 버리고 자연을 훼손하는 양심은 어머니의 품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노소동락(老少同樂), 젊은이와 늙은이가 함께 어울려 행복한 세상. 그것이 김성봉 대장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다. 그에게 산은 노소동락의 공간이자 세대를 이어주는 젖줄이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