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이라고?
졸혼이라고?
  • 이호선
  • 승인 2016.06.03 15:04
  • 호수 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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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적이 언제던가? 잊은 지 오래고 기억도 가물거린다. ‘마친다’ 혹은 ‘졸업한다’는 뜻의 졸(卒)과 ‘결혼’을 의미하는 혼(婚)이 만나 ‘결혼을 마친다’라는 의미의 말이 졸혼이다. 이 단어로 말씀드리자면,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언급하고, 2013년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 즈미즈 아키라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졸혼’이라는 말을 쓰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고 있다.
노년의 세상을 먼저 시작한 일본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노인월드 현상들이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후발주자이자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 폴짝 뛰어 개울 징검다리를 건너듯 달려왔다. ‘졸혼’이라는 것이 ‘이혼’과도 다르고, 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별거’와도 다르니 이는 참으로 새로운 단어이자 새로운 현상이고, 이미 겪은 일본에서는 유행처럼 번진다니 어디 뒤질소냐.
별거와 이혼, 졸혼은 무슨 차이가 있나? 별거(別居)라면 말 그대로 떨어져 거주한다는 말이고, 대부분 우리나라 해묵은 부부의 별거는 폭풍 같은 감정적 격돌 이후 발생하는 일종의 대치상태와 같다. 이혼(離婚)이라면 법적으로 혼인관계를 정리한 상태를 말하고, 늙어 하는 이혼은 흔히 ‘황혼 이혼’이라 하고, 이 단어는 이미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 단어이다.
그렇다면 졸혼(卒婚)이란 무엇인가? 결혼이 무슨 학교도 아니고 결혼을 졸업이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다. 다만 졸혼은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정서적인 혼란이나 격돌도 없는 상태에서 서로 일정기간 떨어져 자유롭게 살아가기로 상호 합의한 일종의 ‘합의된 별거’ 쯤에 해당한다.
마침 한 결혼정보회사가 우리나라 미혼자들에게 물어보니 57%는 졸혼이 괜찮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결혼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노후에라도 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니 이런 답변을 한 젊은이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찰 어른들도 많으실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나라 노년 부부들 중에 이런 졸혼은 없을까? 있다. 아니, 많다. 적어도 필자가 아는 부부만 해도 아내는 도시에, 남편은 농어촌에 각각 집을 두고 살면서 필요하면 다시 올라와 일도 보고 밥도 먹고 행사가 있으면 함께 참석한다. 사이가 나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혼한 것도 아닌 부부들이 꽤 있다. 말이 없었고, 단어만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지 제법 많다.
졸혼이 ‘좋다’ ‘나쁘다’ 말이 많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참으로 궁여지책묘수이다. 이혼을 하자니 그리 싫거나 큰 잘못도 없는데다가 얼마 되지도 않는 살림 나누어 봤자 바로 노인빈곤이고, 사람들한테 이혼이니 뭐니 시선 신경 쓰기도 싫은데다가 다른 사람 만날 자신도 없고, 자식들한테 괜히 미안한 일 만들기도 싫으니, 이혼이나 별거보다는 이렇게 합의된 별거인 졸혼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별 손해 없이 살아갈 만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부부들의 상호허용이라 할 만하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세대가 변하고 있고, 가족이 달라지고, 부부가 새로워지고 있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지만,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삶의 지침이란 것이 없고, 정해진 도리라는 것도 희미해진 세상에서 젊은층이 아니라 노년 부부들의 이런 선택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100세시대에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인류는 100세를 넘어서 살 것이 분명하고, 이렇게 긴 세월을 사는 동안 가족의 구조도 바뀌어 앞으로는 ‘한시적 일부일처제’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즉 30년쯤 계약으로 살아보고 괜찮으면 같이 더 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파트너를 찾아가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인류가 200살, 300살을 살게 된다면 오히려 이런 선택이 ‘합리’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그 세상에는 ‘졸혼’이 가능하리라.
그런데 아직 100살을 채 살지 못하는 우리네 부부들에게 사랑과 의무를 ‘합리’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가족은 늘 사실(fact)이 아니라 해석(解釋)이다. 고정된 합리가 아니라 움직이는 감정유기체다. 과연 부부의 완벽한 ‘합의’가 합리일까? 부부의 고된 삶이 서로 때문이라면 합의된 별거는 합리일 것이다.
그러나 40년, 50년 세월을 함께 한 부부들에게 이 ‘합의’는 ‘합리(合理)’일까 아니면 ‘생존’일까. 과연 가족의 선택은 가족만의 것인가? 이들의 이런 선택이 있기까지 좋은 노년부부의 행복을 위한 사회적 역할은 어디에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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