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국전에 맞서 ‘벽전’ 이끈 혁신적 추상화가
1960년 국전에 맞서 ‘벽전’ 이끈 혁신적 추상화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6.03 15:31
  • 호수 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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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김봉태’ 전
▲ 기하학적 형태와 원색을 이용해 독특한 추상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봉태 화백의 이번 전시에서는 시기별로 그의 작품을 조명한다. 사진은 초기작 ‘작품 1963-8’.

전 덕성여대 교수, 파리‧뉴욕 등서 활동… 대표작 100여점 소개
‘비시원’ ‘춤추는 상자’ 연작 등 대표작 통해 50년 예술사 조명

1960년 10월 5일, 한국미술계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발생한다. 국내 최고 미술 제전인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 한창 진행되던 덕수궁 현대미술관 돌담에 초청받지 않은 작품이 내걸린 것이다. 이를 계획한 건 서울대 회화과 졸업을 앞둔 혈기 왕성한 청년 김봉태 등 젊은 미술가 11명이 결성한 ‘1960년 미술협회’였다. 보수적인 국전에 반대해 일명 ‘벽전’을 열면서 미술계의 파란을 일으켰다. 이 해에 일어난 4‧19의 정신을 이어받은 미술계의 작은 혁명이었다.
‘벽전’을 통해 국내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김봉태(79) 화백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7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기하학적 형태와 원색을 이용해 차별화된 작품세계를 구축한 김봉태의 대표작 10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김봉태는 ‘벽전’ 이후 국내를 떠나 해외에서 더 활발히 활동했다. 1963년 파리비엔날레에 판화를 출품하고 같은 해 뉴욕에서 개최된 국제조형미술협회 심포지엄에 초대된 것을 계기로 1963부터 1985년까지 미국에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이후 1986년 덕성여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표현적인 추상미술 시기’, ‘기하학적 조형 및 3차원성의 탐색’, ‘색면의 유희성과 변형캔버스’, ‘재료를 통한 공간감의 확장’ 등 네 시기로 작품을 구성해 그의 예술세계 변화를 단계적으로 조명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볼 수 있는 ‘표현적인 추상미술 시기’에서는 1960년대 초중반 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 그는 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작가의 즉흥성과 격정적인 감정을 담는 미술사조인 엥포르멜에 심취해 당시 급변하는 사회분위기를 작품에 녹여냈다.
이 시기 눈여겨볼 대표작은 ‘작품 1963-8’(1963)이다. 흙색 바탕에 흰색으로 그려진 무언가를 검정색으로 어지럽게 덧칠한 작품으로 급변하던 시기 흙과 백의로 대표되는 민초들의 혼란스러움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시의 두 번째 공간인 ‘기하학적 조형 및 3차원성의 탐색’에선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기 대표작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 김봉태는 엥포르멜을 버리고 기하학적 추상을 탐구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보편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기하학적 무늬가 동서양을 관통하는 소재로 인식한 것이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 동그라미 안에 오방색(五方色)을 이용해 기하학적 패턴의 팔괘를 그려 넣은 ‘비시원’(非始源) 연작(1980년대 초반~1990년대)을 꼽을 수 있다. 원형은 정신세계를 상징하고 음양오행의 의미를 담고 있는 오방색(五方色)은 우주를 암시한다. 초기에 그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 시기에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우주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개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봤다.

▲ 1992년 작 ‘비시원’

김봉태는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순수 회화 요소인 색채와 색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 작품들은 ‘색면의 유희성과 변형캔버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중 ‘창문’ 연작은 한결 더 발전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창문의 이미지를 변형캔버스와 알루미늄 부조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창은 빛, 희망, 미지의 세계를 의미한다. 기존 작품과 달리 밝은 색을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김봉태가 오랜 정신세계 탐구를 통해 인간 내면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그의 변화는 전시의 마지막 ‘재료를 통한 공간감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춤추는 상자’, ‘축적’ 등의 연작은 기존 작품에서 볼 수 없는 발랄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중 상자를 춤추거나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의인화한 ‘춤추는 상자’ 연작은 그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내용물이 없으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텅 빈 상자를 활달한 사람처럼 표현하면서 50여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가 결국 인간을 넘어서, 버려지는 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에 이른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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