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에 빠진 연극 살리기 위한 원로들의 ‘귀환’
침체에 빠진 연극 살리기 위한 원로들의 ‘귀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6.03 15:32
  • 호수 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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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연극인들이 최근 무대로 돌아와 침체된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진은 박정순이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1인다역을 시도해 주목받은 한평극장 ‘아버지의 불매기’의 한 장면.

옆집에 배우가 산다 40년 경력 60대 배우들의 ‘1평 극장’ 실험
원로연극제 70년대 대표 연출가 김정옥‧오태석 등 저력 과시
햄릿 유인촌·손숙·박정자·전무송·정동환 등 명배우 총출동

지난 5월 30일,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선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주택(도림로81길 16)에선 독특한 연극 공연이 펼쳐졌다. 드라마 ‘상도’를 비롯해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40년 경력의 배우 박정순이 공연과 관련된 모든 것을 혼자 하는 연극을 선보였다. 무대는 배우 혼자 서기도 좁았지만 ‘박정순 한평극장’이란 간판까지 붙은 어엿한 소극장이었다. 이날 무대에 올린 ‘아부지의 불매기’에서 박정순은 배우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직접 극을 쓰고 연출과 출연, 조명 음악 등을 도맡았다. 1인 다역을 하는 60대 배우의 공연이 끝나자 ‘한평극장’ 안은 한동안 박수세례로 시끌벅적했다.
최근 연극계가 원로들의 귀환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4명의 원로배우가 자신의 자택을 개조한 1평 공간에서 매월 1회 이상 공연을 펼치는 ‘옆집에 배우가 산다’를 비롯해 ‘원로연극제’와 유인촌‧손숙‧박정자‧전무송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햄릿’ 등이 무대에 오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옆집에 배우가 산다
포문을 연 ‘옆집에 배우가 산다’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중견·원로연극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옆집에 배우가 산다: 한평극장’ 2기 사업으로 오는 12월까지 이어가는 공연이다. 지난해 이 프로젝트로 큰 관심을 모았던 연극배우 김동수, 박정순이 다시 참여하며, 최초 기획자인 연출가 심철종이 배우로 참여하게 됐다. 여배우로는 윤예인이 처음 참가한다. 관람료는 1만원이며 수익은 모두 배우들에게 돌아간다. 재단으로부터 기부금 영수증도 발급받을 수 있다.
한평극장의 최고 장점은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소극장보다 더 가까워 현장감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명품연기를 본 관객들은 대부분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기존 연극이 배우의 연기를 ‘관람’하는 것이라면 한평극장은 마치 알던 사람의 인생을 ‘목격’하는 느낌이 든다는 반응이 많았다. 한 관람객은 “코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보니 극 속에 들어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 연극과 달리 배우 혼자 모든 것을 도맡는데 이를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이날 박정순은 철사로 연결한 나비 소품을 움직이고 하모니카를 연주하는가 하면, 연기를 하는 동시에 한쪽 손을 벽 뒤로 뻗어 음악과 조명을 바꾸기도 했다. 수십차례 연습한 듯 극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고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세한 공연 일정은 홈페이지(plays .modoo.at)에서 확인 가능하다.

◇명연출가‧작가의 귀환 ‘원로연극제’

▲ 오태석(위), 김정옥(아래) 등이 참여한 원로연극제도 주목받고 있다.

김정옥(85)·오태석(77)·하유상(89)·천승세(78) 등 한국 연극사에 이름을 남긴 명 연출가와 작가들이 귀환해 펼치는 원로연극제도 주목받고 있다.
6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열리는 이번 연극제에는 원로 연극인을 기억하고 존중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정옥이 연출을 맡은 ‘그 여자 억척 어멈’은 6월 1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배해선이 1인 4역을 하는 모노드라마다. 화자인 자신, 1951년 한국전쟁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여배우 ‘배수련’,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의 억척어멈, 조선 시대 동학란을 배경으로 한 억척어멈을 혼자서 연기한다. 1997년 박정자가 동숭동 ‘학전’ 소극장에서 한달 넘게 초연하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6월 12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리는 ‘태(胎)’는 오태석이 9년 만에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태’는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과연 죽음을 뛰어넘어 존속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절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1974년 초연 이후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인도에서의 공연 등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진 작품으로 한국 현대 희곡 중에 손꼽히는 명작 중의 하나다. 주인공인 박중림(박팽년의 아버지) 역은 배우 오현경(80)이 맡아 의미를 더한다.
하유상이 극본을 쓴 ‘딸들의 연인’은 6월 12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1957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됐던 이 작품은 당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시기에 ‘자유연애’라는 소재를 다루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연극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천승세 극본의 ‘신궁’은 6월 17일부터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1977년에 발표된 천승세의 중편소설을 각색한 ‘신궁’은 어촌 무당 왕년이를 통해 악덕 선주와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는 어촌인의 실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왕년의 스타 총출동한 햄릿
원로들의 활약은 오는 7월 12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햄릿’으로 이어진다. 유인촌(65)·윤석화(60)·손숙(72)·박정자(74)·전무송(75)·정동환(67)·김성녀(66) 등 연극계 ‘별’들이 총출동하며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출가 이해랑(1916~1989) 탄생 100주년과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신시컴퍼니가 제작하는 대작으로 9명 출연배우들은 모두 역대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로 구성됐다. 유인촌(10회 수상자)이 햄릿으로, 윤석화(8회)가 오필리아로 등장한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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