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청동투구가 우리나라 ‘보물’이 된 까닭은?
그리스청동투구가 우리나라 ‘보물’이 된 까닭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6.10 13:43
  • 호수 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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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국보‧보물 이야기

마라톤 우승자에 준 부상… 손기정, 10년간 노력 끝 독일서 돌려받아
동의보감, 화암사 극락전 등 보물서 국보 승격… 일부 국보는 보물로
개인도 보유 가능해 삼성가 150여점 소유… 천마총은 시험발굴로 발견

▲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기념으로 받은 그리스청동투구. 50년 후에야 돌려받았고 서양 문화재 최초로 보물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암울한 시대를 살던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준 손기정(1912~2002). 시상대에서 기뻐하지도 못했던 그는 40여년이 지난 후 베를린 올림픽 기념전시회를 위해 옛 사진을 정리하던 중 한 청동투구를 발견한다. 이를 이상히 여긴 손기정은 수소문 끝에 이 투구가 마라톤 우승자의 부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10년간의 노력 끝에 1986년 독일의 한 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투구를 돌려받는다. 우리나라 보물 제904호로 지정된 ‘그리스청동투구’ 이야기다.
최근 ‘문화재제자리찾기’ 등 시민단체들이 2008년 발생한 화재로 크게 훼손된 숭례문 대신 훈민정음해례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해달라는 입법청원을 하면서 국보와 보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국보 319종, 보물 1901종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데 학자와 전문가가 아니라면 자세한 내용을 알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그리스청동투구처럼 감동적인 사연도 있지만 때로는 안타까운 내용을 담은 국보와 보물의 세계에 들어가보자.

◇국보와 보물의 차이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을 본 사람 중 겉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데 하나는 국보로, 다른 하나는 보물로 지정이 됐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국보와 보물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보물은 목조건축·석조건축·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등 유형문화재 중 역사·학술·예술·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지정한 문화재를 뜻한다. 국보는 보물 가운데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크며, 제작 연대가 오래된 것을 골라 지정한다. 제작 의장(意匠)과 기술이 우수해 유례가 없거나 형태, 품질, 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보물도 국보로 승격된다.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했다는 사실도 국보의 자격이 된다.
보물 중에서 승격되는 경우도 있어 국보가 더 뛰어난 문화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보든 보물이든 결국 우리가 소중히 지켜야할 문화재이므로 상대평가는 무의미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면 왜 숭례문은 국보이고 흥인지문은 보물로 지정됐을까. 먼저 건립연도에서 숭례문이 더 앞선다. 1398년 건립된 숭례문은 불타기 전까지 도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었다. 반면 흥인지문은 1869년 지어졌다. 아름다움 축면에서도 절제미를 추구한 숭례문이 과도한 장식에 의존하는 흥인지문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전통목조건축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숭례문이 건축사적 관점에서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보 승격과 지정해제
숭례문 대신 훈민정음해례본(국보 제70호)에 ‘1호’를 부여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청원은 ‘지정번호’를 서열로 오해해서 비롯된 것이란 지적이 많다. 국보와 보물을 지정할 때 관리의 편의를 위해 서울을 중심으로 번호를 붙였을 뿐 관리 우선순위가 아닌 게 사실이고 이런 오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현재 검토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보와 보물이 바뀌진 않지만 지위가 바뀌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 허준이 쓴 동의보감(제319-1∼3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최근 10년간 국보가 된 문화재는 2007년 12월 삼성박물관 리움과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백자 달항아리가 각각 제309호와 제310호로 지정된 것을 포함해 총 14개다. 같은 기간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537개임을 고려하면 적은 숫자다.
반면 지정이 해제되거나 강등된 국보도 있다. 거북선에 장착된 화기로 알려졌으나 1996년 가짜로 판명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귀함별황자총통’(제274호)은 지정이 해제됐고 2010년 보물로 ‘이형 좌명원종공신녹권 및 함’(제278호)이 형평성 문제로 보물 제1657호로 강등됐다.

◇개인이 국보를 소장할 수 있을까?
앞서 국보 제309호가 삼성미술관 리움에 보관돼 있는 것에 의아함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리움은 국가가 아닌 삼성가에서 관리하는 개인미술관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먼저 말하면 개인도 절차가 정당하다면 국보와 보물을 소유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는 상당수의 보물들이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가장 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장한 개인은 삼성가다.
삼성이 수집한 국보급 문화재는 총 150건 이상. 현재 서울의 리움미술관과 용인의 호암미술관에는 국보 37건과 보물 115건, 도합 152건이 분산돼 전시되거나 보관 중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제118호), 가야금관 및 장신구 일괄(국보 제138호), 청자진사주전자(국보 제133호), 청자상감운학모란국화문매병(보물 제558호) 등 면면도 화려하다.
이밖에 빙그레, 코리아나, 한독, 한솔 등 기업도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색 사연 가진 국보‧보물

▲ 신라 금관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국보 제188호 천마총금관.

천마총금관(국보 제188호)을 비롯해 1만1526점의 유물이 출토된 ‘천마총’은 발굴과정에서 극적인 사연을 가지고 있다.
경주 황남동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은 1973년 발굴 당시만 해도 황남동 155호분이라는 숫자만 가지고 있었다. 정부는 1971년 수립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경주 시내 고분 중 가장 큰 ‘황남대총’을 발굴하려 했다. 그러나 대규모 신라 고분 발굴 경험이 없어 먼저 155호분을 시험 발굴했다가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엿장수가 먼저 국보를 알아본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 1971년 전남 화순 대곡리에 살던 한 농부가 집 북쪽의 담장 밖으로 떨어지는 낙수 때문에 물이 고이자 배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삽과 곡괭이로 땅을 파던 중 고철을 발견했다. 농부는 아무생각 없이 엿장수에게 이를 판매했는데 고철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엿장수가 전남도청에 신고했고 이로 인해 현재 국보 143호로 지정된 청동 예기(禮器) 11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78년 발견된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는 당시 충북 단양 하방리 적성을 발굴하던 조사단이 쉴 때 깔고 앉은 비석이었다는 재미있는 사연도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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