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나기’ 속편… 소년은 새로운 사랑을 했을까?
소설 ‘소나기’ 속편… 소년은 새로운 사랑을 했을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6.17 14:23
  • 호수 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순원에 헌정하는 소설집 ‘소년, 소녀를 만나다’
▲ 후배 문인 9명이 황순원 탄생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그의 대표작 ‘소나기’의 속편을 이어쓴 소설집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발간됐다. 사진은 생전의 황순원 작가.

황순원 탄생 100주년 맞아 경희대 출신 작가 9명이 후속편 연작 집필
사춘기‧청년기‧노년기로 접어든 소년 이야기 통해 원작 감동 재현

한국전쟁의 전운이 아직 감돌던 1953년 5월, 당시 38세의 한 소설가가 문학잡지 ‘신문학’에 자신의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전쟁과는 무관하게, 불치병을 앓는 소녀와 이를 좋아하는 소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순수한 만남을 담은 작품이었다. 발표 직후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이 작품은 교과서에 실리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의 하나가 됐다. 황순원(1915~2000)과 그의 대표작 ‘소나기’ 이야기다.
황순원을 기리며 후배 작가들이 작품의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쓴 헌정소설 ‘소년, 소녀를 만나다’(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이 책은 지난해 황순원 탄생 100주년을 맞아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이 기획해 1년여 만에 완성한 것이다.
황순원은 17세 때인 1931년 ‘동광’지에 시 ‘나의 꿈’ ‘아들아 무서워 말라’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1940년 소설집 ‘늪’을 간행한 이후에는 시보다 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2000년 85세로 타계한 그는 ‘소나기’ ‘학’ ‘별’ 등과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그는 경희대학교 국문과에서 23년간 교수로 지내면서 많은 문인을 배출했는데 이번 프로젝트에는 이 학과 출신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의미를 더했다. 문학평론가 김종회 경희대 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전상국, 박덕규, 김형경, 이혜경, 서하진, 노희준, 구병모, 손보미, 조수경 등 경희대 출신 작가 9명이 의기투합해 ‘소나기’의 뒷이야기를 한 편씩 이어 썼다.
널리 알려졌듯 ‘소나기’는 서울에서 온 소녀와 순박한 시골 소년의 순수한 만남을 담고 있다.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는 소녀와 비켜달라고 말도 못하는 소년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소년에게 “이 바보”라고 외치며 조약돌을 던지는 소녀의 ‘잔망스러움’과 말도 못 걸면서 소녀를 위해 대담하게 서리를 감행하는 소년의 사랑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소나기가 오랫동안 사랑 받는 이유는 작품이 전하는 다양한 메시지 덕분이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첫사랑의 기억, 순수한 사랑, 그리고 이별을 통한 상실 등이 소나기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감동의 원천이다. 9명의 작가들이 ‘이어쓰기’를 통해 말하려는 것도 여기에 있다.
구병모의 ‘헤살’은 소녀를 떠나보낸 직후 소년의 아픔을 담았다. 손보미의 ‘축복’은 또 다른 소녀를 내세워 소년과 소녀의 사랑을 관찰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상국의 ‘가을하다’와 서하진의 ‘다시 소나기’는 각각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소년이 담임선생님과 또 다른 소녀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통해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을 담았다.
김형경과 이혜경은 ‘농담’과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토물’을 통해 청년이 된 소년이 소녀를 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과정을 그렸고 노희준과 조수경은 ‘잊을 수 없는’과 ‘귀향’을 통해 노인이 된 소년의 삶을 그렸다. 소녀를 외계인으로 설정해 지구인들의 생각과 현실을 들여다본 박덕규의 ‘사람의 별’도 인상적이다.
작품들이 ‘소나기’에서 공통적으로 주목한 건 ‘조약돌’로 상징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헤살’에서는 소년이 저고리와 함께 소녀에게 주지 못하고 짓이겨진 대추 몇 알과 조약돌을 떠내려 보낸다. 반면 ‘가을하다’에서는 소년이 개울가에서 조약돌을 물수제비로 흘려보내면서도 소녀가 준 ‘조약돌’은 끝내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를 통해 추억이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하는지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두 번째로 주목한 건 이별의 극복이다. ‘다시 소나기’, ‘농담’ 등은 이별의 아픔으로 만남을 주저하는 소년이 새로운 사람을 통해 이를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다. 이 새로운 설렘은 소나기의 가슴 아픈 사랑에 오랫동안 안타까워했던 독자들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반면 소나기의 주제인 상실의 아픔을 그대로 차용한 작품도 눈에 띈다. 노년기에 접어든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잊을 수 없는’과 ‘귀향’은 공통적으로 치매를 내세워 상실의 고통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