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된 천경자 화백 작품 93점 한꺼번에 전시
기증된 천경자 화백 작품 93점 한꺼번에 전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6.17 14:26
  • 호수 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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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 1주기 추모전
▲ 왜색 시비를 딛고 한국미술계에서 보기 드믄 여류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안타깝게 화업을 끝낸 천경자 화백의 1주기 추모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천 화백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93점 전체를 처음으로 한꺼번에 전시한다. 사진은 ‘아마존 이키토스’(1979)의 모습.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 채색화 거장… ‘미인도’ 위작 논란 후 붓 꺾어
‘고’ ‘막은 내리고’ 등 대표적인 여인상, 여행 풍물화, 미완작품도 소개 

의식이 깨인 외할아버지 덕에 일제강점기 당시 남장을 하고 서당에 다녔던 소녀 ‘옥자’. 그는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재학시절 혼담이 오가자 시집가는 게 싫어 다듬잇돌 위에 앉아 미친 시늉을 한 다소 엉뚱한 소녀였다. 소녀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미술’ 때문이었다. 결국 결혼을 피해 1940년 16세 때 동경 유학길 오른 그는 스스로 이름을 ‘경자’로 바꿨고 이는 한국미술사에 길이 남는 이름이 됐다. 지난해 작고한 화가 천경자(1924~2015) 화백 이야기다.
왜색 시비를 딛고 한국 화단에서 보기 드믄 여류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위작 논란으로 안타깝게도 붓을 꺾은 천경자 화백의 추모전이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오는 8월 14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추모전에는 천 화백이 1998년 서울시에 기증한 93점 전체 작품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전시된다.

▲ 천경자 화백의 이름을 알리게 해준 ‘생태’(1951). 뱀 35마리를 그린 파격적인 채색화로 “여자가 뱀을 그렸다”는 입소문을 타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뱀 35마리가 우글거리는 작품인 ‘생태’(1951)를 통해 스타작가 반열에 오른 천경자 화백은 꽃과 여인을 주된 소재로 해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렸다. 작품 속 특유의 고독하고 몽환적이며 애틋한 눈빛의 여인은 천 화백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구성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표출한 작품들을 남겼다. 또 그는 글재주도 뛰어나 다수의 수필집과 신문·잡지 기고문도 발표했다. 이번 전시명인 ‘바람은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도 그의 글에서 따온 것이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선언을 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국내 미술계와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지난해 작고했다. 타계 후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불거지며 현재까지도 시끌시끌한 상태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천경자의 작품 세계를 ‘인생’ ‘여행’ ‘환상으로 나눠 소개한다. 학생 시절부터 60여 년간의 작품 세계는 물론 관련 기록물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기존에 ‘천경자 상설전시실’로 사용됐던 공간을 ‘아카이브’ 섹션으로 꾸며 천 화백이 남긴 수필집과 기고문, 삽화, 관련 기사, 사진, 영상 등을 공개한다.

▲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

‘인생’에서는 천 화백의 이름을 널리 알린 ‘생태’를 비롯한 초기 작품들과 ‘고’(1974), ‘막은 내리고’ 등 대표적인 자화상과 여인상을 소개한다. 이중 눈여겨 볼 작품은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다. 짙은 눈 화장을 한 목이 긴 여인이 뱀 4마리를 화관처럼 쓰고 있는 작품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앙다문 입술과 초점이 없는 하얀 눈은 여인의 한을 잘 보여준다.
‘여행’ 섹션에서는 1970~80년대 당시 ‘여행 풍물화’라고 불렸던 작품들을 선보인다. 천 화백은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1960년대 말부터 타히티를 시작으로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등 해외 스케치 기행을 12번이나 다니며 신문에 그림과 글을 연재했다. 이때 ‘여행 풍물화’라는 천 화백의 독특한 그림 양식이 등장했다. 고갱이 머물렀던 타히티의 고갱미술관을 담은 ‘타이티 고갱미술관에서’(1969), 페루 이키토스의 아마존 강변에서 생선 파는 여인을 그린 ‘아마존 이키토스’(1979) 등은 국내에서 그린 여인상과 달리 밝은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72년 여성 작가로 유일하게 베트남종군화가단에 참여해 맹호 부대의 작전 장면을 그린 기록화도 볼 수 있다.
마지막 공간인 ‘환상’에서는 ‘초혼’(1965), ‘백야’(1966)와 같이 몽환적인 색채와 강한 필치가 담긴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중 눈여겨볼 것은 미완성 작품인 ‘환상 여행’(1995)이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마지막으로 그렸던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을 함께 표현하고 있는데 지우고 덧칠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던 천 화백의 치열한 작업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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