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자를 찾아서]중풍·치매 시부모 모신 ‘孝心며느리’
[효행자를 찾아서]중풍·치매 시부모 모신 ‘孝心며느리’
  • 정재수 기자
  • 승인 2007.07.27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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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오정애 씨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 따라 효행 문화도 바뀌고 있습니다.

 

전시대에서 우리 윗세대들이 보여주었던 효심과 달리 요즘은 효에 대한 개념이 바래고 퇴색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깊은 효심으로 부모님을 봉양하며 사회를 밝게 하는 많은 효자·효부들이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전국의 효자, 효부들을 만나 효행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효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합니다.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몇 년 동안 대소변을 다 받아내다가 거기에 시어머니마저 치매에 걸려 돌아가실 때까지 모신 것 보면 참 대단한 며느리야.”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에 사는 오정애(50)씨를 보고 이웃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면서 남편 뒷바라지와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내며 지역에서 효부로 칭송이 자자한 오정애씨.


오씨는 인천에서 태어나 25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남편 전순환 씨와 사이에 두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다.


시아버지 고 전동연 어르신의 맏며느리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오씨는 남편의 박봉과 농촌생활이 힘들어 당진읍으로 나가 화장품 행상을 하며 살림을 해왔다.


그러던 중 1998년 시아버지가 중풍과 합병증으로 쓰러지면서 다시 시댁으로 들어와 병 수발을 하게 된다.


엎친데 덮친다고 했던가.


시아버지 병 수발에 두 손이 모자랄 정도였는데 시어머니마저 치매와 자폐증에 걸리면서 오씨의 하루하루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1998년에 쓰러진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식사 수발을 하면서 보낸 시간이 5년인데 2002년에는 시어머니마저 거동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간병인 교육을 받거나 어르신들의 병수발을 해본 적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맨몸으로 부딪히는 것 뿐이었다.


오씨의 하루일과는 대소변 받아내기, 팔다리 주무르기, 식사 도와드리기, 목욕시키기 등 시부모님의 손발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았다.


시부모님을 지극적성으로 모시고 살기를 일곱해.


지난 2004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시어머니에겐 충격이었던 것일까?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의 병환이 더욱 심해졌다.


이웃 사람들은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자신이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위험하다며 나가지 못하도록 만류하는 며느리에게 갖은 욕설에 잡히는대로 물어 뜯기도 했다”면서 “그 모진 고통을 다 참고 모신 것 보면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씨는 “올 6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꼭 천국에 가셔서 편안히 생활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해 타고난 효심을 읽지 않았다.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3리 노인회 허공도 회장은 “오씨 같은 효심 착한 며느리가 우리 마을에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지금까지 시부모님께 했던 모든 덕이 오씨 집에 다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정재수 기자 jjs@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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