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7~9월 전기료 한시적 낮추기로 결정… 누진제 합리적 개선 필요
정부, 7~9월 전기료 한시적 낮추기로 결정… 누진제 합리적 개선 필요
  • 배지영 기자
  • 승인 2016.08.12 15:05
  • 호수 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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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에어컨 리모콘을 손에 쥔 시민들은 전원 버튼을 눌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항상 고민에 빠지게 된다. 에어컨을 켤수록 내야 하는 전기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누진세’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폭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누진제를 폐지하거나 개편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누진제의 원리는 간단하다. 사용을 많이 할수록 값이 비싸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행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는 총 6단계로, 최저 1단계(월 100kWh 사용, kWh당 60.7원)와 최고 6단계(월 500kWh 사용, 709.5원) 등급 간 요금 차이가 무려 11.7배에 이른다. 예를 들어,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 정도 사용했다면 한 달 5만3000원(월평균 342㎾h)이던 요금이 32만1000원까지 치솟게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총 3단계에 최저요금 대비 최고요금이 1.5배에 불과하고, 미국은 3단계에 1.6배, 캐나다는 2단계에 1.5배 수준으로 우리 누진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심지어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에는 누진제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사한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2013년 기준 78%이며 현재는 8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1983년에는 보급률 3%에 불과해 고소득층만의 사치품으로 취급되던 에어컨이 이젠 ‘생활필수품’이 된 셈이다.
누진제가 도입된 것은 오일 쇼크가 일어난 직후인 1974년이다. 당시 산업체의 생산 활동 차질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가정의 전기소비를 줄이고 산업용 전기 공급을 늘리고자 도입됐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그에 따라 산업 환경이나 에너지 여건도 변화했지만 가정용 전기에만 적용되는 과도한 누진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누진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국민의견을 물은 결과, ‘현행 누진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누진제 완화 39.6%, 누진제 폐지 41.3%)는 의견이 80.9%로, ‘현행 누진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9.1%)보다 9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름’은 10.0%였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전력 대란의 위기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누진제를 완화해 전기를 더 쓰게 하는 구조로 갈 수는 없다”며 “지금도 주택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공급되고 있기 때문에 요금을 낮추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누진제 개편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현 신임 당대표 체제로 전환한 새누리당은 누진제 개편 필요성에 공감하고 다각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이정현 대표는 최고위원회 회의 직후 “정부 측의 설명을 들어보니 전기요금 누진제는 개선해야 할 점이 있어 보인다”면서 “중요한 민생 안건으로 채택해 개선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가정용 전력수요가 많은 현실을 감안해 계절별 차등 요금제를 제도화하자는 게 국민적 요구”라며 이달 중 자체 개편안을 발표키로 했다.
국민의당 또한 현 6단계의 누진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다수 가정이 월 400kWh 이하로 전기를 소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1~4단계 구간을 두 단계로 통합하고, 100kWh~ 200kWh 구간(현 2단계)과 300kWh~400kWh 구간(현 4단계)에 대해 누진율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실질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하고 전기요금을 인하시키자는 방안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8월 11일 당정 협의를 통해 7~9월까지 한시적으로 가계 부담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당정은 우선 현행 6단계인 가정용 누진제 체계에서 구간의 폭을 50㎾h씩 높이는 식으로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1단계의 경우 100㎾h 이하에서 150㎾h 이하로, 2단계는 101~200㎾h에서 151~250㎾h 등으로 일제히 상향 조정하는 셈이다. 7월 요금은 소급 적용해 요금을 낮춰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2200만 가구가 평균 19.4%의 요금 인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를 이를 위해 총 4200억 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정용 전기요금 폭탄에 대한 불만은 해마다 한여름이면 제기돼 왔다. 계절적 요인이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다 보니 그때만 넘기면 된다는 인식 때문에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시적 완화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전력 소비 급증을 억제하면서,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맞는 소비패턴을 수용할 대안은 무엇인지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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