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
  •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6.08.19 13:14
  • 호수 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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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에서 가장 인기 많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한글교실’이다.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어르신들의 진지한 얼굴을 보노라면 존경의 마음은 물론 사랑스럽다는 느낌마저 든다. 일흔이 넘어 한글을 처음 배웠다는 한 여성 어르신은 글을 배우니까 뭐가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글을 배우니까 안 보이던 꽃이 보이더라.”

우리는 그동안 교육과 일, 여가 생활을 나이와 장소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 짓는 삶을 살아왔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대학 졸업 때까지(20대 중반까지) 학교에서 받는 것이고, 일은 대학 졸업 직후부터 은퇴할 때까지(20대 중반부터 정년까지) 일터에서 하는 것이며, 은퇴한 후에는 모든 부자유로부터 해방돼 실컷 여가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시간과 공간을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건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발상이며, 무엇보다도 평균수명이 50~60세쯤 되던 시대의 얘기다. ‘100세시대’를 앞둔 지금, 삶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은퇴혁명’의 저자 미치 앤서니가 주장한 것처럼 우리는 일, 교육, 여가의 경직된 구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교육을 대학 졸업 때까지만 받는 것으로 한정시키지 말아야 한다. 평생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한다. 내 친구들은 새로운 일이 필요한 시점에서, 혹은 일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학교로 달려가고, 전공을 바꾸기도 했다.
물론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나 누구한테서나 배울 수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도 그러하다. 은퇴 나이와는 상관없이 평생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이 좋다. 직장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하는 일만 일이 아니며, 가사노동이나 봉사활동도 중요하고 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놀이나 여가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일과 여가라는 이분법적인 시간 개념은 무너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여행과 여가생활을 은퇴 이후로 미뤄놓지 않는다. 일하는 틈틈이 즐기려고 노력하며, 은퇴 후에도 생산적으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앤서니는 인생을 교육받는 기간, 근로기간과 은퇴기간으로 구분해서 교육과 일, 여가를 따로따로 하는 것은 건강한 삶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생의 어느 기간에도 배우고, 일하고, 또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지능도 인지능력도 유지할 수 있다. 선진국을 여행할 때마다 노인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노인들은 다양한 교육기관이나 교육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동네 도서관에서도 책을 보며 공부한다.
은퇴 후 대학 옆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노인을 청강생으로 받아들이는 대학들도 많은데, 나이 많은 청강생들이 어찌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질문을 많이 하는지 청강생은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규칙까지 만들어놓은 대학도 있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성인을 위한 좋은 교육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 동네마다 인문학이나 어학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고, 혹은 요가 등을 가르쳐주는 곳도 많이 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은퇴자나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동네 교육기관에서, 혹은 동네 도서관에서 ‘열공’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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