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한때 그만뒀다 복귀하며 ‘바지저고리’ 캐릭터 만들어”
“만화 한때 그만뒀다 복귀하며 ‘바지저고리’ 캐릭터 만들어”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6.08.19 13:22
  • 호수 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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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에 연재할 ‘화분’ 삽화 그리는 이두호 화백

‘객주’ 그릴 땐 원작자 김주영 직접 만나 담판… 내용 어려워 공부하며 작업
77년 전 발표된 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애정 갈등

“독자가 소설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다하겠다.”
한국 만화계의 거두 이두호(73) 화백이 소설 연재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화백은 9월부터 ‘백세시대’ 신문에 새롭게 연재되는 이효석(1907~1942)의 장편소설 ‘화분’(1939년)의 삽화를 맡아 그리게 된다. ‘화분’은 세 남성과 세 여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애정의 갈등을 벌이는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성을 부끄럽고 천한 본능이 아니라 원초적이며 건강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두호 화백은 무더위도 잊은 채 17만자 분량의 이 소설을 완독하고 등장인물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화백은 요즘 부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양반이야기’ 등 한국사 관련 만화를 그리고 있다.

-‘화분’을 단숨에 다 읽었다고.
“서울 송파동 아파트에서 사무실까지 지하철로 2시간 가까이 걸려요. 출퇴근 하며 경로석 구석에 앉아 읽었어요.”
-삽화를 그리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이 소설이 일제 강점기에 발표됐어요. 조선시대나 현대물이라면 배경을 그리기가 쉬울 테지만 시대가 어중간해 고민이 돼요. 하길종 감독의 영화 ‘화분’(1972년)을 봤는데 소설과 또 다른 분위기라 별 도움이 안되더라고요. 액션이 많은 소설이 삽화로 그리기가 쉬운데 이 소설은 심리묘사가 길고 사건이 집안에서 주로 이루어져 그리기가 만만치 않아요.”
-동성애가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소설이다.
“맞아요.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시대였으니까 짐작만 하게 해놓았어요. 가볍게 읽으면 지나칠 수도 있어요.”

이두호 화백은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중퇴했다. 중학교 3년 때 ‘피리를 불어라’란 만화를 그려 1년 치 등록금을 벌었다. 1969년 ‘소년중앙’에 ‘투명인간’을 연재하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소년경향’에 연재한 ‘머털도사’는 ‘아기공룡 둘리’(이수정)와 ‘외인구단’의 ‘까치’(이현세)와 함께 한 세대를 풍미한 캐릭터이다. 소설 ‘객주’․‘임꺽정’ 등을 만화로 그려 큰 인기를 얻었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한국만화문화상(1995년) 등 수상.

-1980년대 ‘머털도사’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잡지 마감에 쫓겨 별 생각 없이 만들어낸 인물이에요. 나이는 365세, 출생은 지구…. 이런 식으로 상상 속의 캐릭터이지요. 머리털을 뽑으면 시공간을 초월해 변형되고 상대를 제압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항상 한국적인 만화를 그려왔다.
“처음엔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아무거나 그렸어요. 축구 만화를 그려달라고 하면 축구 룰도 모르면서 그렸을 정도니까요. 그런 생활을 10년 정도 하니까 회의가 생기더라고요. 이후 순수 화가의 꿈을 실현하려고 2년 동안 유화를 실컷 그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동료가 만화 그리는 걸 옆에서 보다가 다시 만화가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때부터 ‘바지저고리’(조선시대 서민을 상징)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만화 ‘객주’(2002년․바다출판사)는 원작 소설 이상으로 유명세를 탔다.
“중고거래 시장에서 10권 세트가 70만원에 거래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올해 봄에 재출간됐어요.”
-처음에 어떻게 그리게 됐나.
“우리 것을 그리겠다고 작정한 판에 마침 신문사에서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신문사와 원작자(김주영) 사이에 저작권과 관련해 얘기가 잘 안 돼 제가 직접 김주영 선생을 만났어요. 김 선생이 ‘내가 이 선생 그림을 안다. 지금 400만원이 필요하지만 이 선생 형편을 봐 300만원만 달라’고 해요. 제가 기분이 상해 ‘400만원을 드리겠다’고 하고 그렇게 했어요. 1988년 ‘만화광장’이라는 주간지에 일주일에 16쪽씩 3년 정도 그렸어요.”
-‘객주’는 ‘울고 들어가 웃고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읽기가 힘들다.
“책을 펴보니까 이게 영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닌 순 한글인데도 제가 모르는 단어 천지라서 충격을 받았지요. 그리면서 우리 말 많이 배웠어요. 생각나는 말이 부부를 낮춰 부르는 ‘가시버시’, ‘너비아니’(불고기) 등이에요. 김주영 선생이 마음대로 그리라고 해 여자 등장인물 이름도 기억하기 좋게 고쳤어요.”
-‘임꺽정’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1990년 대여섯 군데 연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때에 ‘스포츠조선’에서 연재하자고 해서 홍명희 작가의 ‘임꺽정’을 바탕으로 그린 겁니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연재를 마치고 나서 우연히 임꺽정이 아들과 함께 찾아갔다는 칠장사(안성시 죽산면)를 실제로 가보게 됐어요. 대웅전 기둥이 휘었고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맞춰 올려놓았어요. 목수들은 그걸 ‘그랭이 뜬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더 단단하고 오래 간다고 합니다. 만약 그 사실을 연재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임꺽정 부자가 이런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삽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우리나라 만화계의 ‘계보’를 소개해 달라.
“김성환․김종래․박기당․박기정․산호․최경․권영섭 등 50년대에 시작한 분들을 1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저를 비롯해 60년대에 시작한 강철수․이철수․한희작․윤승운․신문수 등이 2세대이고, 70년대에 시작한 이현세․이수정 등을 3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절필 선언했던 1997년의 일이지요. 청소년 보호를 이유로 만화가들이 줄줄이 소환 당했어요. 제 경우는 스포츠신문에 ‘째마리’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포졸이 ‘독대’란 인물을 창으로 찌르려는 장면이 폭력적이라는 겁니다. 제가 ‘탈옥범을 잡으려는 장면인데 왜 폭력적이냐’고 하니까 검사가 ‘왜 하필이면 창을 가랑이 사이에 겨누었느냐’는 겁니다. 한순간 멍해졌어요. ‘세상에! 그게 가랑이 사이로 겨눈 것이었구나…’했지요.”
-재판 결과는.
“당시 11명이 재판을 받고 5년 만에 무죄로 끝났지만 이현세는 ‘천국의 신화’ 문제로 1년 더 고생을 했어요.”
-인터넷 만화 ‘웹툰’이 유행인데 그쪽으로 나갈 생각은 없는지.
“네이버 등에서 연락이 오지만 우리가 할 일은 아니지요. 아날로그 시대를 깨끗이 잘 마무리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봐요. 저는 그들에게 ‘너희 세대는 바뀌었다, 우리를 본받지 말라’고 말해요.”
-나이 들면 어떤 변화가 오는가.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더 고개를 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인을 봤을 때 그들은 좀 더 여유롭고 이해의 폭이 클 줄 알았어요. 막상 그 나이가 돼보니 오히려 반대에요. 지하철을 타보면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내는 노인을 봅니다. 내가 당하면 나도 저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화분’ 삽화 연재를 화두로 시작된 인터뷰의 말미에 이두호 화백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삽화를 재밌게 그린 기억이 있다”며 “8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새롭게 선보이는 이효석의 대표작이 ‘백세시대’ 독자들로 하여금 시대적 향수에 젖어드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말을 마쳤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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