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두더지가
햇볕에 타들어가는
육신을 헐떡거리며
언덕길 위로
안간힘을 다해 기어오른다
평생 지하에 동굴을 뚫어
새로운 세계를 열고
오가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들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얼굴 없는 선구자
목청만 세워서 민낯을 내는
찬란한 거리의 분노
남들이 몰라도 아랑곳없이
미지의 세계를
손발이 닳아 피멍이 맺히도록
하루도 쉬지 않고
소통의 통로를 이룩한다
어쩌다 절벽에 추락하여
못 볼 세상 모습에 소스라쳐
길을 잃고 몸부림친다
순간을 예지한 냉엄한 몸짓에
어디서 날아오는지
등 푸른 파리 떼가 몰려든다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