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독거노인들, 유언장 작성 돕는 서울시
저소득 독거노인들, 유언장 작성 돕는 서울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08.19 13:31
  • 호수 5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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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울시가 저소득 독거노인들이 편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유언장 작성을 무료로 지원하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 노인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모습.

“가난한 삶 살았어도 유류품 깔끔히 정리해야 편안한 임종”
문맹자들에겐 녹음 방식… 중환자실선 구수증서 방식 등 사용

지난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윤 모(여‧당시 85세) 어르신과 지적장애 딸을 둔 장 모(여‧84) 어르신에게는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인 손자와 단 둘이 살던 윤 어르신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살던 임대아파트의 임차권을 손자에게 넘기고 싶었다. 문제는 윤 어르신의 딸 넷이 이를 반대하는 것이다. 또 장 어르신 역시 딸에게 전세자금 4000만원을 상속하고 싶었지만 가족관계등록부상 친딸로 등재돼 있지 않아 상속인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어르신은 자신의 뜻대로 손자와 친딸에게 유산을 넘길 수 있게 됐다. 재산이 얼마 되지 않아 꺼려했던 유언장을 작성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사망한 뒤 남은 물건이나 재산의 처분 때문에 고민하는 저소득 노인들을 위해 서울시가 무료로 유언장 작성을 돕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서울시복지재단 산하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이하 공익법센터)는 최근 노원구 어르신돌봄지원센터와 저소득 독거노인 유언장 작성 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유언장 작성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어르신돌봄지원센터에서 관리하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유언장 작성을 지원하고 이를 검토 후 향후 서울시 전체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 노원구민이 아니어도 공익법센터 대표전화(1644-0120)로 문의하면 누구든지 무료로 유언장 작성을 지원받을 수 있다.
고독사 증가로 인해 고인의 유류품 정리나 보증금 처리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유언장에 미리 처리방향을 작성해 놓으면 나중에 불필요한 분쟁을 막을 수 있다.
전가영 공익법센터 변호사는 “가난한 삶을 살았다 해서 재산 분쟁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면서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의 자녀도 가난한 경우가 많아 임대아파트 임차권을 둘러싼 분쟁이 종종 생긴다”고 말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공익법센터는 유언장에 사후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내용을 1차로 기재하고, 여기에 더해 주위 지인들에 대한 부탁이나 자신이 갑자기 위중하게 됐을 때의 당부까지 담아 어르신들이 편안히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했다.
유언장의 작성 방식도 다양하다. 간단한 자필 증서 방식의 유언장 외에도 문맹 노인을 위한 녹음 방식, 구수증서(口授證書, 유언자가 입으로 서술한 내용을 제3자가 대필하는 것) 방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유언장 작성을 지원한다. 또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 독거노인이나 작성이 까다로운 방식의 유언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센터 소속 변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자택을 함께 방문해 유언장 작성을 지원할 예정이다.
앞선 사례에서 윤 어르신은 평생 한글을 익히지 못한 상황에서 유언장 작성 전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해 자칫하면 손자에게 임차권을 넘겨주지 못할 뻔했다. 중환자실은 기계 반입이 허용되지 않아 녹음 유언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익법센터는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장 작성을 진행했고 윤 어르신의 손자는 영구임대아파트 임차권과 보증금 260여만원을 상속받게 됐다. 윤 어르신은 유언장을 작성한 지 한 달 뒤 숨을 거뒀다.
재산을 넘길 사람이 없을 때도 원활한 유류품 처리를 위해 유언장을 남기는 것이 좋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강 모(여‧70) 어르신은 서울 종로구의 43㎡(13평)짜리 임대주택에서 20여년간 홀로 살았다. 이혼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은 7년 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며느리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가 못나서 자식들한테 해준 게 하나도 없어요. 제가 쓰던 물건들이라도 저처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어요”.
강 어르신은 공익법센터의 도움을 받아 이러한 내용이 담긴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에 따라 강씨 사후에 TV와 냉장고는 노인복지회관에 기부될 예정이다. 강 어르신은 “내가 떠난 후 이 물건들을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전가영 변호사는 “외로운 노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 임종 이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심리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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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영 2016-08-25 14:41:39
지난 6월 용산구 한강로 경노당을 다니면서 재능기부를 유언장에 대해 강의를 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의아해 하셨지만 강의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한결같이 공감대를 형성하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유언장은 꼭 필요한것 같다 어느날 어떻게 무슨일을 겪을지 모를 현실에서 자신의 주변을 잘 정리하여 아름다운 임종을 하는것도 현명하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