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세 구당 김남수 옹의 소원
101세 구당 김남수 옹의 소원
  • 신은경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6.10.07 13:20
  • 호수 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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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 김남수 선생님을 알게 해 주신 분은 나의 친정어머니셨다. 외할아버지가 한의사이셔서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전통의학의 효력을 믿고 계셨다. 90년대 말쯤, 무릎이 아프셨던 어머니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대문에 침술원이 있는데, 거기 선생님이 용하기가 이를 데 없다고 나를 잡아 끄셨다.
머리가 하얗고 자그마한 키의 구당 선생은 눈은 반달처럼 웃고 있었지만 다부진 인상이셨다. 그 분의 지론은 1뜸 2침 3약. 최고는 뜸이요, 그 다음이 침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병원이라면 한방이든 양방이든 그 병원만의 비법이 있어 자꾸 그 병원을 찾아야만 낫게 되어 있는데, 이곳은 그게 아니었다. 뜸자리를 다 알려주고, 환자가 쑥뜸 뜨는 법을 배워 집에서 알아서 뜨라는 것이었다.
피부 위에 직접 쑥뜸을 올려놓고 태우는 직구를 사용한다. 좁쌀만 하게 뭉친 쑥을 놓고 향불을 붙이면 1~2초가 안되어 쑥은 호로록 타버리고, 피부엔 바늘로 찌르는 듯한 순간적인 아픔이 남는다. 그리고 피부 속까지 뭉근한 통증이 시원하게 번진다.
뜸이 좋은 이유 몇 가지가 있다. 일단 싸다. 당시 2000원 짜리 쑥 한 통이면 몇 달을 뜰 수 있었다. 둘째, 쉽다. 뜸 봉을 뭉치는 법만 알게 되면 집에서도 선생님이 잡아주신 자리에 뜸을 뜨기만 하면 된다. 한 자리에 다섯 번 씩 매일 뜨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소화, 배설이 잘되어 피부가 좋아지고 붓기가 내려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아픈 곳이 있으면 바로 그곳에 그냥 뜸을 뜨면 된다.
선생님은 환자를 치료하는 중에도 매일 한 번씩 직접 침상위에 엎드려 뜸 치료를 받으셨다. 솜씨가 있건 없건 누구든지 시술하도록 해서인지 선생님 등은 마치 거북이 등처럼 온통 뜸 자국으로 덮여 있었다.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더군다나 싸고, 간단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이 뜸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직접 뜸 하는 법을 배워 선생님을 따라 봉사하는 곳에 가 보게 됐다.
종로의 어느 경로당으로 봉사를 갔을 때였다. 손가락 관절염으로 열 손가락이 모두 굽어져 펴지지 않는 할머니께 뜸을 떠드리게 됐다. 열 손가락 관절 마디마디에 촘촘히 뜸을 떠드리고 나자 할머니가 갑자기 “어…어…”하시며 손가락을 펴시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도망치듯 구당 선생님을 부르며 뛰어갔다. “선생님! 기적이 일어났어요. 할머니 손가락이 펴졌어요.”
호들갑을 떠는 내게 선생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원래 그런 거예요. 그러나 오래된 병은 온 것만큼 많이 돌아가야 해요. 잠시 좋아지지만 꾸준히 더 오래 치료를 해야지요.”
내가 사는 지역 어르신들에게도 치료를 해드리고 싶어 사회복지관에 허락을 받고 구당 선생님과 봉사를 시작했다. 간이침대를 놓고 봉사하실 선생님들이 모이자, 형편이 어려운 동네 주민들이 무료 침‧뜸 치료를 받으러 몰려왔다.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오 여사는 꾸준한 치료 끝에 이제 손을 쓸 수 있게 됐다며 그 손으로 직접 감자를 쪄 와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결국 누군가 비난 섞인 민원을 관청에 넣어 우리는 그곳에서 쫓겨났지만, 이후 교회로 장소를 옮겨서 한동안 많은 분들의 아픔을 계속 치료해 줬다.
참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며 싸고도 효과가 놀라운 것이어서 합법적으로 많은 국민이 뜸으로 건강하실 바라는 것이 구당 선생의 소원이었지만, 그분은 늘 논란의 한 가운데 있었다. 출생이 1915년이냐, 1922년이냐로부터 시작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개월 후에 태어난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께 의술을 배웠느냐, 43년에 도지사 추천으로 면허증을 땄다는데 왜 침사 자격증은 83년에 새로 받았느냐, 침사 자격증만 있는 사람이 왜 뜸도 떠주느냐, 고향 장성을 떠난 적이 없다면서 어떻게 함경도 침사자격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이냐, 유명인들을 치료했다는데 과장된 것이 아니냐 등등.
누구의 말이 맞는지 우리 같은 사람이야 알 수가 없지만, 뜸이 효과가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 오랜 법정싸움 끝에 일반인에게도 침‧뜸을 가르칠 수 있도록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축하드리고 싶어 고향에 내려가 계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직도 내 번호를 저장해 놓으셨는지 반갑게 전화를 받으셨다. 구당 선생의 부친이 돌아가신 해가 1915년이 맞다면 22년에 태어났을 리 만무한 1915년생 구당 선생님은 올해 101세이시다. 너무 늦기 전에 한 번 가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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