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속에 등장하는 담배
대중가요 속에 등장하는 담배
  • 이동순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승인 2016.10.21 13:41
  • 호수 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이 즐기는 여러 기호품 중에서 담배를 떠올려 봅니다. 한국인의 민족사에서 담배란 박래품(舶來品)이 들어와서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천국과 지옥을 숨 가삐 넘나들도록 만들었는지요. 오랜 옛날, 담배는 ‘핀다’고 하지 않고 ‘먹는다’고 했습니다. 마시는 연기로서보다 먹는 식품으로 간주했던 듯합니다.
모두들 ‘담배 먹기’에 너무도 심취했던지라 ‘담배를 즐기면 굶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추우면 몸을 따뜻하게 하며, 더우면 몸을 서늘하게 해 준다’고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담배를 자주 먹으면 기침과 가래를 제거해준다는 놀라운 기록까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담배가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서 복통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치료약으로 장죽(長竹)을 물리는 광경마저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도입초창기에 담배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기던 기호품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담배를 일컫는 또 다른 멋스런 이름들이 많았었는데요. 담바고, 남령초, 남초, 망우초, 심심초, 상사초란 명칭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담배와 관련된 노래를 찾아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 1912년 닙폰노홍(일본축음기회사)에서 발매된 조선잡가 ‘담바귀 타령’입니다. 이후로도 ‘담바귀 타령’이란 표제를 달고 있는 음반이 두어 종류 보입니다. 1936년 김복희가 신민요 ‘담바구야’를 불렀고, 1938년에는 이옥란이 ‘담배를 물고’(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말인 1939년, 이난영의 ‘담배집 처녀’(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가 나왔습니다. ‘담배집 처녀’는 서울의 어느 네거리 잡화상에서 담배를 팔던 한 처녀가 늘 담배 사러 오던 핸섬한 청년을 은근히 기다리는 심리묘사 장면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늘 오던 청년이 보이지 않을 때 담배집 처녀가 속으로 안달하는 모습까지 담아내고 있네요. 노래가사에는 그 시절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어 공급했던 ‘하도’(はど) ‘가이다’(かいた) ‘미도리’(みどり)란 담배이름도 등장하고 있어서 생활사적 자료로서도 흥미롭습니다.
드디어 광복 이후 1960년대 중반, ‘국산연초 아리랑’(김용만)이란 제목의 노래가 출현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는 ‘아리랑’ ‘파랑새’ ‘풍년초’ ‘진달래’ ‘파랑새’ 등 그 시절에 판매되던 담배 이름들이 가사 속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내용에는 ‘양담배 피는 마을 눈물이 오고, 풍년초 피는 마을 웃음이 온다’는 식으로 외국담배에 대한 배격이 강하게 등장합니다.
이후로 담배테마 노래들은 ‘담배불 타는 역사(조신일, 1968), ‘담배연기’(최양숙, 1968), ‘담배’(서유석, 1972), ‘마지막 담배’(이상열, 1973), ‘담배’(윤형주, 1974), ‘담배꽁초’(김정미, 1974), ‘담배’(김애리, 1985), ‘담배 가게 아가씨’(송창식, 1986) 등으로 시대가 바뀌면서도 줄기차게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담배테마 노래는 대개 개인의 삶이 봉착하는 허무, 좌절, 우울, 비탄, 고뇌 따위를 스스로 순조롭게 여과하거나 극복하지 못할 때 그저 손쉽게 습관적으로 가까이 활용하는 도구로써 단조롭게 등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더불어 그 도구의 성격 자체가 지극히 소모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힘겨운 유지에 기여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양숙의 담배노래는 시름과 사랑, 한숨과 눈물을 태우도록 했던 담배와 끝내 성냥개비나 꽁초처럼 덧없이 녹아버린 1960년대 청년들의 낙망, 허무감 따위를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서유석의 담배노래에는 1970년대의 시대적 빛깔에 강한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그 무렵 청년들의 고통스런 내면풍경이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시적화자는 담배가 ‘두 손가락에 끼어 삶과 죽음의 허무를 가르쳤다’거나 ‘두 입술에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우도록 했을 뿐이라고 토로합니다. 중심을 잃어버린 청년의 이상은 마침내 색동저고리를 벗고 흰 상복을 입고 말았다는 격렬한 좌절의 고백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우리는 시대별로 출현했던 여러 담배테마 노래들 가운데서 1939년 이난영의 ‘담배집 처녀’와 1986년 송창식의 ‘담배 가게 아가씨’에 그려진 사랑의 구도를 흥미롭게 대조해봅니다. 전자는 담배 사러 오는 청년을 사랑하게 된 담배집 처녀의 애타는 광경을 담았고, 후자는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늘 무관심한 담배집 처녀에게 환심을 얻고 싶은 청년의 갈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불량배에게 위기를 겪는 처녀를 용감하게 구출시키면서 청년은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게 된다는 전개방식입니다. 두 작품의 구조와 모티브는 서로 유사하면서도 담배집이라는 매개공간을 통해 거기서 미묘하게 소통되던 청년들의 삶과 사랑을 재치 있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대중문화사의 유익한 자료로써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늘은 무대 위에서 기타를 후려치는 방식으로 ‘담배 가게 아가씨’를 부르던 송창식의 격정적인 창법을 떠올리며 우리들의 흘러간 청춘시절을 추억해보았으면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