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기다려요
밥이 기다려요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6.10.21 13:42
  • 호수 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밥이 기다려요

알록달록한 가방들이
인근에서 풀 뽑는 주인들을 기다린다
그림자가 반토막 되도록 주인들은 오지 않고
바람이 맡고 가는 도시락 내음
밥이 기다려주는 노동은 신성하다

문성해(시인)

**

노동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올 주인을 기다려주는 밥은 얼마나 따뜻한가. 그림자가 반 토막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밥은 이미 다 식었겠지만 밥 한 그릇은 사람을 다 데우고도 남아 저 나무며 공기며 햇살까지도 따뜻하게 할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어깨와 등뼈와 가슴을 위로할 줄 아는 밥 한 그릇의 따뜻함.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오늘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땀 흘리고 난 뒤 둘러앉아 각자 가져온 밥을 모아놓고 함께 먹는 한 끼의 식사가 그래서 얼마나 맛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초라한 밥상이어도 혼밥(혼자 먹는 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정담으로 수북한 이 자리가 기름진 고기밥상보다 백배는 꿀맛이라고, 그래서 밥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밥이 기다려주는 노동은 신성하다고. 글=이기영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