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걷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빨리 걷지 않아도 괜찮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10.21 14:08
  • 호수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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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걷기왕’

뛰면 실격하는 경보 통해 경쟁 강요하는 사회 꼬집어

어릴 때부터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겪는 여고생 만복. 그는 자동차, 배, 비행기 심지어 소를 타도 멀미를 해 ‘토쟁이’란 별명이 붙었다. 이 때문에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걸어서 등하교하다 보니 학교도 매일 지각하고, 수업시간엔 잠만 자기에도 모자란다. 이런 만복에게 담임선생님은 뜬금없이 경보(競步)를 권유하고 그녀의 삶은 단숨에 달라진다. ‘걷기왕’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선천적 멀미증후군에 시달리는 소녀의 경보 도전기를 그린 영화 ‘걷기왕’이 10월 20일 개봉했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성공으로 ‘최연소 흥행퀸’으로 불리는 심은경(사진)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걷는 걸 잘한대’부터 ‘걷기왕’까지 네 개의 장으로 나눠 한 소녀의 성장기를 그리며 곳곳에 애니메이션을 더해 아기자기한 한 편의 동화처럼 구성했다.
육상부에 들어간 만복은 규칙에 따라 걸어야만 하는 경보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죽기 살기로 경보에 매달리는 다른 부원들 속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의 만류와 다른 부원의 텃세로 인해 만복은 잠시 그만두기도 한다. 만복은 숱한 사건과 고비를 겪고 난 뒤 운 좋게 인천 대표로 전국체전까지 출전하게 되지만 차를 탈 수 없기에 육상부 선배와 함께 서울까지 80㎞를 걸어가는 강행군을 펼친다.
우여곡절 끝에 전국체전에 출전한 만복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선두로 나선다. 그의 깜짝 활약에 의기의식을 느낀 다른 선수들이 무리하게 속도를 높였고 결국 만복과 부딪혀 함께 넘어진다. 완주 실패의 위기 속에서 만복은 또 한 번 자신의 인생을 바꿀 선택을 하게 된다.
작품은 강화도의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를 통해 경쟁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기성세대로 대표되는 만복의 아버지는 보충수업을 가는 딸에게 “사회에 나가면 보충이라도 있는 줄 아느냐, 다 실전”이라고 매정하게 내뱉는다. 선생님들도 학생들에게 “더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며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주문한다. 이에 아이들은 “공무원이 돼서 칼퇴근한 뒤 맥주를 마시는 게 꿈”이라며 수업시간에 공무원 수험서를 펼친다.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소재가 경보다. 만복이 출전한 경보대회에서 한 선수가 먼저 치고 나가자 나머지 선수들도 결국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앞다퉈 속도를 내는 장면은 경쟁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경보의 가장 큰 어려움은 뛰고 싶은 욕구를 참는 것인데 영화는 달리면 실격하는 경보를 통해 걸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만복을 연기한 심은경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는 멀미로 인해 무기력해진 고등학생이 희망을 품었다 좌절하고 깨닫는 과정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특유의 코믹 연기로 중간중간 재미도 잘 살려냈다.
음악 선곡도 돋보인다. 만복이 경보에 매진하는 장면에서 ‘타이타닉’의 주제곡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을 리코더로 연주한 곡이 삽입되는데, 애달프게 느껴질 만큼 서툰 연주가 만복의 마음을 코믹하게 대변한다. 만복이 키우는 소, ‘소순이’ 시점의 나레이션도 큰 웃음을 준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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