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집‧도쿄’에서
‘고향의 집‧도쿄’에서
  • 차흥봉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 승인 2016.10.28 13:22
  • 호수 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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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고향과 고향의 집을 생각하면 가슴 깊숙이 무엇을 깨닫고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따스함을 느끼기도 하고, 살아온 인생과정에 대한 회고와 함께 미래의 삶에 대한 의욕을 느끼기도 한다. 추석이나 명절에 부모의 묘소를 찾을 때도 똑같은 심정을 느끼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점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간사를 함께 생각나게 하는 것이 고향의 집이다.
지난 10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소설 같은 인간사를 담은 고향의 집 개원식이 있었다. ‘고향의 집‧도쿄’라는 이름의 이 고향의 집은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설립자인 윤 기(尹 基) 이사장이 일본에서 1989년 ‘고향의 집‧고베’를 세운 이래 다섯 번째로 설립한 재일동포노인을 위한 노인요양시설로,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노인복지시설이다.
윤 기 이사장은 1980년대 홀로 사는 재일 한국노인이 외롭게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 가까이 아무도 모르고 지낸 비극적인 기사를 읽고 이 뜻있는 사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준공식장에서 목포 공생재활원 합창단이 200명 넘는 축하객 앞에서 부른 이 축가가 내 가슴을 저미게 했다. 한국에서 듣던 ‘고향의 봄’ 노래보다 훨씬 더 애틋하게 들려왔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재일동포노인들의 인생사를 생각할 때 가슴이 아파옴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향의 집‧도쿄’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 오가는 깊은 역사의 사연을 담고 있다. 이곳에 사는 한국동포 노인들은 100여년 전 일제강압통치가 시작된 이래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한 동포들도 많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쟁에 끌려가 갖은 고난을 겪은 사람들도 많다.
이들 동포들은 전후에도 일본인과 달리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차별 속에서 살아온 경우가 많다. 이처럼 한 많은 인생사를 살아온 노인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이곳 노인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개개인 노인의 인생 한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사의 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고향이 그리워도 돌아갈 수 없는 노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이 시설의 이름도 고향의 집이라고 지었다. 일본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도 하고 한국 독지가들의 후원금을 받기도 했으나 이 ‘고향의 집‧도쿄’는 한국, 일본 두 나라를 넘나드는 고향의 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과거 100년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비롯된 가슴 아픈 역사를 딛고 일어서서 이제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한국도 지난 20세기 후반 경제성장에 힘입어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있다. ‘고향의 집‧도쿄’에서 생활하는 한국동포노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이제 승화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만큼 두 나라 관계도 변화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한국측 축하객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측 축하객들도 여기 살고 있는 노인들이 모든 한을 가슴에 묻고 이제부터 행복한 노년생활을 하게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했다.
마침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이제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현재 일본은 세계 최고령국가이고, 한국은 고령화속도가 세계 1등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100년이 되는 2045년경에는 두 나라의 평균수명과 고령화율이 공히 세계 1, 2위 국가가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이처럼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서 ‘고향의 집‧도쿄’가 과거 100년 두 나라 사이의 가슴 아픈 한을 딛고 일어서서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로 쓰는 모범적인 노인복지시설로 거듭나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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