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뛰어들었을 때 미란은 왜 집에를 안가고 이곳으로 왔을까 염려가…
방에 뛰어들었을 때 미란은 왜 집에를 안가고 이곳으로 왔을까 염려가…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6.11.04 13:51
  • 호수 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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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9>

악마가 뱀으로 변신하고 낙원으로 숨어드는 장면에서는 문득 집 뜰에서 본 뱀 생각을 하고 섬찟해지면서 얼마나 흉측스런 짐승인가를 느끼며 뜰에서 뱀을 본 자기의 자태가 바로 낙원의 이브였던 듯한 생각이 들며 몸서리를 쳤다. 유혹의 장면을 보아 나가는 동안에 한 가지 의문이 가슴속에 서리우기 시작했다. ——금단의 과실을 먹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여간한 허물이 아니기 때문에 금했을 터인데 아무리 유혹이 컸다고 하더라도 얼마나한 용기로 그 천법을 범하게 된 것인가. 그 무서운 공포와 불안을 두 사람은 어떻게 정복한 것일까. 허물을 범하는 첫 순간의 용기를 두 사람은 대체 어떻게 얻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얼마나 용감한 사람들인가. 뒷일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 무서운 율법을 거역하고 깨트리지 않았나. 어떻게 하면 대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커다란 의문의 벽에 부딪치자 단주와 미란은 그만 머리 속이 혼란해지면서 다음 장면들이 부질없이 눈앞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그 가장 중대한 의문을 해석하지 못하고는 벌써 그 다음부터의 이야기는 두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몸을 궁싯거리며 머리를 흔들며 앉았노라니 문득 영사기의 기계소리 아닌 요란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 왔다.
“비가 아닐까.”
정신을 가다듬고 들으려니 사실 그것은 영화관 지붕을 후려치는 빗소리였다.
“기어코 폭풍운가.”
험악하던 날씨가 일을 친 모양이었다. 미란은 그 요란한 소리와 요동하는 생각으로 영화에서는 정신을 돌리고 황겁한 마음에 자리를 일어섰다. 단주도 따라서 어둠을 헤치고 문께로 나왔다. 문밖 거리 위에 종록같이 쏟아지는 빗발과 바람길을 바라볼 때 혼란과 공포가 머리 속에 일며 단주는 두말없이 미란을 끌고 등대하고 섰는 자동차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디로 가야 되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비를 피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곳을 찾으면 좋았다. 단주는 엉겁결에 운전수에게 아파트를 분부했다. 물속을 헤엄치는 고기같이 빗속을 헤엄쳐서 아파트에 이르러 방에 뛰어들었을 때 미란은 비로소 왜 집에를 안가고 이곳으로 왔을까 하는 염려가 솟으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아직도 혼란한 정신에 알지 못할 꿈의 나라로 온 듯한 착각을 떨칠 수 없었다.
처음 보는 방안——서너 평 가량밖에는 안 되는 좁은 방안에 침대며 의자며 의걸이며 탁자 위에 널려진 찻그릇들이며가 어수선한 속에서도 독특한 배치로 놓여 있는 것이 미란에게는 일종 신기한 느낌을 일으켰다. 벽에는 여배우들의 그림과 나체화가 함부로 붙었고 잡지와 책들이 구석구석에 널려졌고 병의 꽃은 거의 시들어가고 반쯤 열린 트렁크에서는 되구말구 담은 옷가지가 엿보이는——그 모든 어지러운 모양 속에서 미란은 단주의 마음속을 헤쳐 본 듯, 겉으로는 단정하면서도 기실은 보헤미안이요, 방랑성을 띠인 단주의 성미를 그 방안의 어지러운 치장이 그대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겉은 가다듬었어도 속은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단주의 마음을. 정리 되지 못한 그 방안 공기에서 미란은 문득 현마의 냄새를 맡는 듯하며 침대와 의자에서 현마의 지배를 받는 수밖에는 없었고 그 지배를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는 단주의 꼴이 눈앞에 선해지면서 어지러운 방안의 모양이 바로 발버둥치는 단주의 반항의 마음의 표현인 것 같고 요란한 폭풍우의 그 밤 방안은 한층 그 효과를 더하고 있는 듯도 하다.
“……측후소 오후 구 시 반 발표——밤으로부터 새벽까지 폭풍우가 엄습합니다. 경계구역은 제일구 동남부, 제이구 해안부. 동남부는 더욱 심하겠고 바람의 시속은 약 이십 미터로서 큰 나뭇가지를 흔들만 합니다. 특별히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라디오의 기상특보가 요란하게 울려나올 때 미란은 몸을 죄이면서 지금 밖 거리를 온통 휩쓸고 있을 폭풍우의 세력을 느끼자 여러 가지 걱정으로 조바심이 되며 아닌 때 단주의 방에는 왜 침입하게 되었을까, 자기가 침입하므로 현마의 냄새를 방에서 물리치자는 셈일까——하는 생각이 솟는 것이었다. 가슴이 설레고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단주도 떨리는 마음에 머리를 흐트리고 달려가 라디오의 스위치를 돌려 기상특보의 요란한 소리를 꺼버렸으나 이번에는 대신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교향악이다. 전원교향악임이 차차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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