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노케어’의 뿌리는 경로당
[기고]‘노노케어’의 뿌리는 경로당
  • 류성무 경북 김천시 가메
  • 승인 2016.11.18 14:03
  • 호수 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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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보행기에 의지해 골목길을 내려오던 경로당 회원인 홍 할머니를 만났다. 어딜 가느냐 여쭈니 경로당에 들렀는데 아무도 없어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홍 할머니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필자는 그 길로 그를 모시고 경로당으로 향했다.
홍 할머니는 독거노인은 아니었다. 아들 내외가 매일 아침 일찍 농장에 나가 홍 할머니는 경로당이 아니면 꼼짝 없이 집에서 혼자 지내야 했다. 이 때문에 아침에 경로당에 와서 종일 놀다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가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가 됐다.
경로당 회원으로 가입할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85세의 고령이어서 기존 회원인 70대 어르신들이 가입을 꺼렸던 것. 알고 보니 이미 이웃 경로당 몇 곳에서 홍 할머니의 가입을 반대했고 마지막이란 생각에 우리 경로당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회장인 필자는 경로당의 본래 목적에 맞게 홍 할머니의 신규가입을 승인했다. 또 그가 혼자 있더라도 냉난방기를 가동시켰고 TV채널 선택권도 최고령자인 홍 할머니에게 줬다.
이후 홍 할머니는 무탈하게 경로당과 집을 오갔다. 다소 홍조를 띠고 있었으나 건강은 큰 이상이 없어 보였고 보행기에 의지하긴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인생이라는 말처럼 지난 봄 홍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졌다.
그날 경로당 여성 부회장이 놀란 표정으로 할아버지방으로 달려왔다. 홍 할머니가 심상치 않다는 말에 남성 회원들이 할머니방으로 갔을 때 그는 이미 의식을 완전히 잃은 채 엎드려 있었다.
급하게 119에 신고를 했지만 아들 내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홍 할머니의 비상연락처를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홍 할머니의 집 아래층에 세든 세탁소에서 겨우 아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했지만 단번에 연결되지 않았고 결국 홍 할머니가 김천의 한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뒤에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 일로 인해 경로당은 마을주민들에게 신뢰를 얻게 됐다. 비상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요양원이 아닌 경로당에 부모를 내몬 자식을 대신해 건강한 노인들이 아픈 노인을 돌본 것을 극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 할머니는 끝내 작고했다. 무책임한 아들 내외는 장례를 치른 며칠 후 경로당을 찾아와 늦게나마 홍 할머니를 돌봐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홍 할머니처럼 갈 곳이 없어 골목길의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쪼그려 앉아 있는 독거노인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을 경로당에 모시고 간다. 경로당마저 없었더라면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에 쓰러지는 노인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또 경로당에서는 건강체조를 비롯해 혈압체크, 치매예방 등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건강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보완해야 할 점도 많지만 노인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것을 피할 순 없다. 하지만 경로당이 있기에 암울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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