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고독에 관한 유쾌한 성찰
죽음과 고독에 관한 유쾌한 성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6.12.02 14:15
  • 호수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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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모를 찾습니다’

30년 만에 만난 고모와 조카 교감하는 과정 그려내

중년의 은행원 ‘켐프’는 30년간 연락이 닿지 않던 고모 ‘그레이스’로부터 “곧 죽는다”는 내용이 담긴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길로 켐프는 일도 그만두고 임종을 지키기 위해 무작정 고모를 찾아간다. 한밤 중 양복 차림에 여행 가방을 들고 들이닥쳐 자신을 조카라 소개하는 켐프를 본 고모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반겨주기는커녕 그를 향해 들고 있던 빗을 세차게 던진다. 고모와 조카 사이라고 하기엔 수상한 두 사람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된다.
노년의 고독과 죽음을 유쾌한 관점으로 풀어낸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가 12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캐나다 총독 문학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캐나다의 국민작가이자 배우인 모리스 패니치(64)의 대표작이다. 21년간 26개국에서 공연되며 현대판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이 작품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켐프와 홀로 살며 죽음만을 기다리던 그레이스가 1년 동안 함께 하며 점차 마음을 열고 교감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30년 만에 마주한 둘은 가족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서로에게 엉뚱한 행동을 보인다. 어릴 적 상처로 온갖 성격장애를 겪은 켐프는 고모를 간호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장례식 생각뿐이다. “우울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면서도 “화장(火葬)으로 해드려요”라며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고모도 이상하긴 마찬가지. 잠이 든 켐프를 지팡이로 쿡쿡 찌르거나 그가 외출한 사이 몰래 가방을 뒤지며 경계한다.
곧 죽을 것 같다던 고모는 오히려 점점 기력을 되찾고, 켐프가 고모를 돌보는 일은 예상보다 길어져 1년을 훌쩍 넘긴다. 이에 조바심을 느낀 켐프는 “장례식엔 뭘 입고 가지?” “장기는 어느 부위를 기증할까요?” “관은 스몰 사이즈면 되겠네” 같은 망언을 퍼붓고 급기야 자살 기계까지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로윈(10월 31일)과 크리스마스, 새해까지 함께 보내게 되자 켐프는 점차 가슴 속 묻어둔 상처를 꺼내 놓으며 고모와 교감하게 된다. 하지만 곧 말 없는 고모의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면서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간다.
작품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예컨대 고모가 죽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켐프는 “요즘 고모 건강이 걱정돼요. 점점 좋아지고 있거든요”라는 식의 유머를 선보인다. 고모를 죽이기 위해 음식에 독을 타거나 전기충격기를 만드는 켐프의 어수룩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역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죽음과 어울리지 않게 경쾌하게 진행되는 음향도 극의 재미를 높인다. 특히 켐프가 고모를 죽이려 할 때 흘러나오는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는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지난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하며 대세로 떠오른 하성광과 연기 인생 50년을 맞은 배우 정영숙이 맞추는 호흡도 인상적이다. 전체 대사가 채 열 마디도 안 되지만 표정과 몸짓을 통해 ‘무언의 연기’를 펼치는 정영숙과 1인극 수준의 대사량을 소화해야 하는 하성광의 명품 연기는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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