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나타난 현마의 자태에 미란도 기급을 할 듯 몸이 움츠러들며…
우뚝 나타난 현마의 자태에 미란도 기급을 할 듯 몸이 움츠러들며…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6.12.23 13:54
  • 호수 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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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16>

수선을 피우는 프로펠러는 씨근덕거리는 동물 같다. 비행기 전체가 혼을 가진 짐승임이 완연하다. 옛날 시인이 곤어라는 고기와 붕새라는 위대한 새를 상상하고 그 크기가 각각 수천 리가 된다고 허풍을 떨었으나 별것 아니다. 지금 눈앞의 기계체가 바로 그 붕새임을 느끼면서 수천 리를 날아오고 수천 리를 날아갈 그 기계 새가 좀 있으면 자기들을 후려차 가지고 갈 것을 생각할 때 신기한 감격이 생기면서 한편 무시무시한 모험의 감정이 전신을 스치고 흘렀다. 등뒤에 현마가 나타난 것이 바로 그런 때였다.
어깨를 스치어 뒤를 돌아다보고 단주는 깜짝 놀랐다. 우뚝 나타나 선 현마의 자태에 미란도 기급을 할 듯 몸이 움츠러듦을 느끼면서 돌아섰다. 바로 어깨 위로 유들유들한 얼굴을 들고 서 있는 현마의 꼴은 술래잡기를 할 때에 어느 결엔지 나타난 술래의 모양같이 혼을 뽑는다.
“놀랐지.”
목석같이 서 있는 두 사람을 두 팔에 안을 듯 다가서면서 현마는 싱글싱글 웃는다.
“세상에서 나를 속이진 못해. 눈치가 귀신 같거든.”
두 사람은 할 말을 모르고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다.
“이런 법이 있나. 어른들의 승낙두 안 맡구 제 맘대로들.”
현마는 엄한 얼굴을 지녀도 보았다가 다시 누그러지면서 그들의 안색을 살핀다.
“사람이 졌을 때엔 어떻게 하더라. 이긴 사람의 명령대로 좇아야겠다.”
아직까지도 마음이 살아 있고 꿋꿋한 것은 그래도 미란이었다.
“지긴 누가 져요. 여기서 이렇게 들켰다구 아주 진 줄 아나요. 천만에요.”
“뽐을 내보면 뭣해. 손안에 든 쥔 걸. 공연한 수고를 끼치지 말구 솔곳이 투구를 벗구 칼을 버리는 법야.”
꾸짖으려면 톡톡히 꾸짖어서 단속을 하는 법이 아니라 긴급한 때라도 미란들에게 대해서는 항상 이렇게 웃음 반 농 반으로 누그러지게 구슬려 오는 현마였다. 새삼스럽게 정색을 하고 위엄을 보이려고 해도 벌써 그른 것이 수염은 온전히 끄들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귀찮은 집에는 안 들어갈 작정이예요. 이왕 나선 걸음에 바람이래두 쐬여야지. 언니와 아저씨 집이지 왜 우리들 집인가요.”
미란이 무심히 던진 ‘우리들’이라는 대명사에 현마는 귀가 번쩍 뜨이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자 두 사람의 팔을 잡아 낚으며 뒷걸음을 친다.
“엉큼한 소리 말구 내 분부대로 좇으리나까.”
현마는 비로소 소리를 높이면서 두 사람을 끌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유와 사연을 말하고 표를 무르려고 할 때 밖에서는 비행기의 발동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미란은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나 어쩌는 수 없는 잡힌 몸이다. 별수없이 표는 물리우고 여객기는 두 사람의 낙오자를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 버리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린다. 그 무례한 태도를 창으로 내다볼 때 단주는 인생의 굴레에서 밀리워 떨어진 듯한 모욕을 느끼면서 화가 버럭 나는 것이었다.
“자유를 이렇게 속박해요. 권리를 짓밟구.…… 창피해 못 견디겠네.”
“자유는 무슨 자유야 주제넘게. 미성년에게 아직 그런 권리 없어.”
현마는 맹랑한 단주를 핀잔을 주고 팔들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미란은 팔을 끌리우면서도 몸을 흔들며 어린아이 모양으로 투정을 부린다.
“답답하게 가두구는 바람두 못 쏘이게 하니.”
“바람을 쏘이려거든 다음 기회는 없나 왜. 꼭 비행기가 맛이라면 내 태워 주지 않으리. 다음 번 동경 갈 때……”
뾰로통하게 빼진 미란과 얼굴에 심술의 빛을 가득 담고 게정을 부리는 단주와를 데리고 자동차 안에 앉았을 때 현마는 비로소 안심이 되면서 가슴이 놓였다. 인생의 낙제생들을 떨어 버리고 홀로 자랑스럽게 날으는 여객기는 어느덧 하늘 멀리 멀어진다. 그것을 좇으려는 듯 자동차도 내닫기 시작했으나 단주와 미란에게는 여객기와 자동차의 거리가 벌써 만리 길이나 되는 듯 생각되면서 그 위대한 붕새는 아직 자기들로서는 다칠 수 없는 엄격한 영물 같이만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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