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장남이 아버지에게 기대했던 사랑
이효석 장남이 아버지에게 기대했던 사랑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7.01.20 13:25
  • 호수 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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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을 하는 동안 작은 바람이 있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네 남매를 위한 글을 찾고 싶었다. 너무나 개인적인 바람이었지만 요절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그런 식으로라도 확인하고 싶었고 보상 받고 싶었다.”
가산 이효석(1907~1942)의 장남 이우현(80) 이효석문학재단 이사가 유족대표로 이효석 전집에 써넣은 글 중 일부이다. 이 이사는 3년여의 오랜 작업 끝에 지난해 12월 말, 서울대 출판문화원을 통해 이효석 전집(전 6권)을 발간했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글을 발견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다는 얘기다.
이 역사적인 편찬 작업을 주도적으로 해온 이는 이상옥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이상옥 교수는 본지 ‘백세시대’에 4년여에 걸쳐 ‘나를 물들게 하는 시와 꽃’을 연재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 전집 편찬을 처음 기획했을 때 우리는 이효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꼭 필요한 연구 자료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양 있는 일반 독서대중이 읽기에도 적합할 만큼 반듯한 텍스트를 제공하자는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효석 전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초의 이효석 전집은 1959년 춘조사에서 간행된 ‘이효석전집’(전 5권)이다. 이 책 역시 이 이사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실이었다. 1956년 경기고를 졸업한 이 이사는 연소한 나이로 국립도서관 등지를 찾아다니며 작고한 부친의 작품들을 일일이 모아서 필사한 후 다섯 권의 전집으로 묶었던 것이다.
그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이 이사는 반생 동안 고국을 떠나 살다가 2011년에 귀국했다. 이듬해 사재를 출연해 이효석문학재단을 설립하고 부친의 문학을 기리는 몇 가지 중점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사업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전집 편찬이었다. 매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을 선정해 강원도 봉평에서 성대한 시상식을 개최해온 것도 그 중 하나다.
이 이사는 1월 초, 이효석 전집 한 질을 본지 편집국에 보내왔다. ‘백세시대’ 신문에 이효석의 장편소설 ‘화분’이 이두호 화백의 삽화와 함께 새롭게 연재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서였을 터이다. 새 전집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5권에 수록된 서간문이다. 이효석이 김동인‧최정희‧유진오‧김동환 등 당대 최고의 작가와 지성인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 작가의 문학적 고뇌와 사생활이 담겨 있다. 그 중 1940년 5월 22일, 부인(이경원)을 떠나보낸 직후 소설가 최정희(1906~1990)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한다.

“오랫동안 편지 안 드린 것은 여러 가지로 심경이 복잡한 까닭이었습니다. 제가 불행을 당한 지도 벌서 석 달은 넘어 넉 달째 잡아듭니다. 고인에게 대한 죄송한 마음과 비감을 지금껏 잠시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로 사랑을 많이 받아온 편이라고 생각하오나 그 중에서 단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 같이 지금 생각하면 뼛속에 젖어드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남자 같이 다욕하고 횡포한 것이 있을까요. 늘 아내에게는 허물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수록 깊게 반성되며 간 사람에게 대한 애감이 더욱 가슴을 파고듭니다. 저 이외의 사람에게는 쓸데없는 말이오나 허물하시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말을 씁니다. 나날이 얼마나 쓸쓸한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저는 고적한 사람인데 이번에 그 고독감을 한층 더 깊게 맛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쓸쓸해 못 견디겠어요. 좀 허랑하게 범속하게 살아보면 덜 쓸쓸해질까 생각해보아도 헛것입니다.”

이효석은 친지들에게는 슬픔과 외로움을 토로했지만 자식들에게는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나 보다. 이 이사는 아버지의 글을 모으는 과정에서 행여 자식들을 위한 사랑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 이사는 자신의 소망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번 전집 발간 작업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품들을 찾을 수 있었고 여러 번의 교정을 거치며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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