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다
피다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7.02.24 14:30
  • 호수 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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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음미하는 디카시 산책

피다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고
꿈이 사라지는 것 아니 듯
나를 자른다고
봄꽃 못 피우겠는가!

이시향(시인)

**

봄이 왔는데, 봄이어서 꽃 피워야 하는데, 꽃 피울 가지 하나 남지 않은 몸으로 눈이 부시도록 환한 목련꽃 두 송이. 닫힌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내와 오버랩 되면서 나는 울컥해진다.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아픔 따위야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만 다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절망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꽃을 피우고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내 마지막 희망만은 결코 잘라버릴 수 없다고 온 몸으로 항변하는 저 한 그루 꽃피는 나무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오늘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당신이 오늘 허투루 보낸 하루가 오늘 죽은 이가 그렇게 원한 하루다’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나는 지금 저 한 그루 목련같이 혼신의 힘으로 살고 있는가’ 물음 앞에 다시 부끄럽다. 봄이 와서 꽃이 핀 것이 아니다. 꽃이 피어서 봄인 것이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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