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발하는 꽃으로 환하게 표현한 분단의 풍경
만발하는 꽃으로 환하게 표현한 분단의 풍경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7.02.24 15:14
  • 호수 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송 창 : 잊혀진 풍경’ 전
▲ 송 창 작가는 1980년대부터 비무장지대를 돌며 자신만의 화풍으로 분단의 풍경을 담아왔다. 사진은 분단의 현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그곳의 봄’(2015).

1980년대부터 판문점‧임진강‧철원 일대 돌며 남북의 모습 담아
꽃송이 흩날리는 모습 담은 ‘낙화’, ‘연천발 원산행’ 등 인상적

지난 2월 17일 경기 성남시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는 ‘의주로’라는 작품이 내걸려 있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한 도로에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제는 끊겨버린 평안북도 의주로 가는 1번 국도에 작가가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꽁꽁 언 남북관계를 나타낸 듯 시린 겨울이지만 그 속에 활짝 핀 꽃들은 밝은 내일을 암시하고 있었다. 송 창(65) 작가의 눈에 들어온 분단의 풍경은 이랬다. 눈 쌓인 시린 겨울이지만 언젠가 꽃피는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30여년째 분단의 풍경을 화폭에 그려온 송 창 작가의 근작을 소개하는 ‘송창 : 잊혀진 풍경’ 전이 오는 4월 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길이 4~7미터에 달하는 대형작품들과 2010년 이후 제작된 신작중심의 평면 및 입체 작품 50여점을 통해 그가 탐구해온 분단의 풍경을 보여준다.
송 작가는 1982년 이종구, 황재형 작가 등과 ‘임술년동인’을 결성해 노동시장과 농촌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의 삶을 화폭에 그려왔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판문점, 임진강, 철원 일대 비무장 지대를 답사하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본격적으로 분단 현실을 담기 시작한다.
시대 분위기로 인해 거친 붓질로 광활한 비무장지대를 표현하고 어둡고 침침한 색조로 길과 논밭을 묘사하던 그의 작품들은 새 천년에 들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2000년 초반 ‘남한강’ 연작 이후로 색채가 점차 밝아졌고 자연 자체에 대한 탐구에 몰입하게 된다.

▲ 2014년 작 ‘낙화’.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맨 먼저 13개의 미사일 모형을 활용한 입체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한반도에서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전쟁의 공포를 형상화했다. 미사일 모형 틈에는 소나무 껍질을 활용해 그린 통나무와 그 사이를 가르는 묵직한 칼을 설치한 작품 ‘굴절된 시간’(1996)을 함께 내걸어 주제를 극대화했다. 전시장에 내걸린 2000년대 이전 작품은 대부분 캄캄한 어둠처럼 암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냉랭했던 남북관계가 대화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의 작품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분단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꽃이나 식물, 동물 등을 통해 ‘서정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꽃송이가 흩날리는 모습을 담은 ‘낙화’(2014), ‘연천발 원산행’(2013) 등은 꽃을 뿌리는 의식을 통해 숭고한 희생을 위로하고 있다.
특히 ‘연천발 원산행’은 기차를 타면 단숨에 갈 수 있는 고향을 지척에 둔 망향의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작품 속 꽃들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분들에 대한 조의(弔意)처럼 다가온다.
그의 철학은 대작에서 잘 드러난다. 비무장지대를 답사하고 돌아오다 본 황혼녘의 임진강 하류의 창공에 새까맣게 모여든 철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린 ‘나는 새는 경계가 없다’와 ‘그곳의 봄’(2015)이 대표적이다.
‘나는 새는 경계가 없다’는 수천개의 마끈과 태양 빛을 연상케 하는 노란 물감으로 새들의 장엄한 군무를 연출함으로써 분단을 희망적으로 그려냈다. 유골 탑과 비석 위에 얹힌 수많은 꽃송이를 통해 ‘분단’이라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그곳의 봄’ 역시 꽃송이로 장식된 비석 옆으로 이를 지켜보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강아지를 배치해 긍정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송 작가는 “분단에 채인 숱한 죽음들에 대한 애도와 언제든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는 남북대치의 상황을 색다른 형식적 구도를 통해 환기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송 작가의 작품들은 공사가 중단된 다리 등 ‘길과 도로’를 형상화한 게 많다. 이 역시 작품을 통해 비무장지대에 가로막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아픔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그려낸 것이다.
민간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눈밭 너머 포탄의 불꽃이 타오르는 광경을 묘사한 ‘섬광’과 연천에서 원산으로 향하던 쓸쓸한 기찻길의 풍경을 담아낸 ‘기적 소리’ 등도 분단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송 작가는 “분단의 고통을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휴전선 부근 비무장지대를 가보면 길도 끊어지고 민간이 접근할 수 없는 암울함이 보인다”며 “분단은 우리의 가장 무거운 현실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 분단현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