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먹기’
노인들의 ‘먹기’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7.03.03 12:38
  • 호수 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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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넘어가면서부터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평생 먹었으니 ‘먹음’이 질리기도 할텐데 말이다. 게다가 ‘밥’이다. 밥을 먹어야 먹은 것 같으니, 그게 중독이건 의존이건 습관이건 뭐건 우리 몸은 쌀로 이뤄진 거대한 동체임이 분명하다.
호르몬이 줄어들며 맛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니 절대미각도 끝났다. 우리나라 여대생과 노인의 입맛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은 여대생들보다 단맛은 2배, 짠맛은 5배, 신맛은 4배, 쓴맛은 7배로 강한 자극을 줘야 맛을 안다.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한다면 짠맛의 인식능력은 10배나 감소한다. 나이든 분들에게 커피는 그저 믹스커피인가 했더니,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블랙커피를 더 강하게 마시는 롱블랙 마니아들인 것이다.
노모가 만든 반찬이 짰던 것은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 곧 나이 듦의 문제였다. 짜다고만 했지, 그 이유를 묻지 않은 딸들은 유죄이다. 미각의 저하는 무죄요, 묻지 않은 이들은 유죄고, 무턱대로 나무란 이들은 종신형이다. 맛이 나야 먹지 않겠나. 지들은 글로벌 시대 세계의 모든 요리들을 ‘맛있게’ 먹을 혀를 가졌으니 맛나겠지. 좋겠다. 세월을 탓하기도 하고 젊은 맛을 부러워해보기도 하지만, 언제까지 뾰로통해 있을 것인가. 우리도 좀 먹고 살 길을 모색해보자.
만성질환이야 종류만 다를 뿐 거의 모든 질환에 대해 의사들은 유사한 음식처방을 한다. 바로 ‘짜지 않게 소식 하세요’이다. 안다. 내게는 맹탕인 게 자식들에게는 짜고, 내게 소식인 것은 자식들에게 ‘푸드 파이터’처럼 보이니, 기준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의사의 기준은 ‘짜지 않게 소식(小食)’, 젊은이들은 ‘유행에 맞게, 있어 보이게, 많이’, 그리고 차이야 좀 있겠지만 중년들은 ‘럭셔리하고 품위 있게’ 먹고자 한다. 노년들의 ‘먹기’는 어떤 기준이 어울릴까? 먼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는 자신의 먹기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엇이라고 붙이겠는가?
노년의 현실을 보자면, 홀로 있는 이가 100만이 넘으니 진정한 ‘혼밥족’이요, 대개 반찬은 한 가지만 놓고 먹으니 ‘일식씨’요, 이가 없어 대충 씹어 넘기니 ‘호로록 꿀떡’, 일 년이 넘도록 반찬엔 큰 변화가 없으니 ‘마니아’라 할만하다. 이를 일괄 묶어보면 ‘호로록 꿀떡 혼밥 마니아 일식씨’가 바로 노인의 먹기 이야기의 제목이라 할만하다.
그러면 노년이 꿈꾸는 먹기는 어떤 것일까? 그리움으로 치자면 ‘겸상’이요, 찬으로 치자면 생선이 놓이는 ‘5첩 반상’이요, 빛나는 치아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고기찬’이 제격이요, 요즘 유행한다는 냉장고 파먹기로도 한상 차려내는 ‘냉파족’이라 할 것이다. 이를 묶어보면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도 5첩에 고기가 곁들인 함께 하는 겸상’이다.
같이 먹고 싶고 제대로 먹고 싶고, 갖춰 먹고 싶고 알뜰히 먹고 싶은 노인들의 ‘먹기’ 욕망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너무 외롭지 않고 가볍지 않게, 또한 너무 급하지 않고 때로는 외식도 해가며 먹기를 권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먹기 위해 누군가를 찾아가야 한다. 내가 찾아가던 남이 나를 찾아주던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건강에 좋다는 낯선 식단과 건강에 좋은지는 모르나 함께하는 식사, 이 둘 중 노인들에게는 외로이 명을 늘리는 낯선 식단보다 숟가락 부딪히며 함께 밥을 먹던 가족의 ‘함께 먹기’가 중요하다. 노인들이여, 나의 ‘먹기’를 살펴보라. 너무 오래 혼자 먹었거든 옆집 문을 두드려 같이 먹자. 너무 한 가지 반찬만 먹었다면 그 집과 반찬을 바꿔 먹어보자. 씹을 이가 없다면 작은 조각으로 다시 음식의 모양을 만들어서 먹어보자. 생존의 먹기가 아니라 사람의 먹기, 누림의 먹기를 하도록 해보자. 매일 먹고 매끼 먹으니, 먹기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이제 나의 ‘먹기’에 이름표를 붙여보자. 그리고 이름표에 맞는 먹기를 만들어 가보자. 먹는다는 것은 나를 유지하고 동시에 나를 구성하는 것이니, 새 이름표를 달고 나의 먹기로 나를 재구성해보자.
봄에 우리는 햇살을 맞고, 나물을 뜯었다. 그리고 나물의 새순마다 손끝이 닿아 음식이 되면서 봄은 우리에게 몸이 됐다. 이제 다시 봄이다. 나물이 없어도 새순이 없어도, 묵은 김치라도 싹 빨아서 새로이 무쳐보자. 묵은 오이지라도 물기를 싹 빼고 새로 무쳐보자. 봄의 이름으로 무치는 묵은지는 우리 노년이 이 봄에 해야 할 첫 ‘먹기’ 이름표 달기 행사이다. 올해는 좀 잘 먹어보자. 봄처럼 먹고 여름처럼 차리고, 가을처럼 나누고 겨울처럼 서로 돌보며 먹어보자. 오늘부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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