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사 주시겠어요?” (미란은 현마에게) 천연스럽고 수월하게 내던졌다
“피아노를 사 주시겠어요?” (미란은 현마에게) 천연스럽고 수월하게 내던졌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7.03.03 12:42
  • 호수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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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25>

“——나두 천재될 소질이 있을까.”
“천재 병에 걸리기 시작한 모양이지. 어릴 때 한 번씩은 다 치르고 나는.”
“어서 대답이나 해요. 제게두 소질이 보이나 어쩌나.”
대답하기 전에 현마는 딴소리를 꺼낸다.
“미란이 올에 몇 살이지.”
“왜요. ——열여덟.”
“아까 그 소녀가 몇 살인지나 알구 말인가.”
“…………”
“미란이와 동갑이야. 벌써 한 수 진 셈이지. 적어두 대여섯 살 때부터 시작해서 십여 년의 연습을 쌓구 오늘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니 지금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그를 좇아갈 셈야. 음악은 어떤 예술보다두 장구한 시간을 요하는 것이구 음악의 천재란 말하자면 연습의 천재인데.”
“왜 학교 때 음악을 못했던구.”
“공부는 안 하구 장난만 치구 놀구만 지냈으니 그렇지.”
미란은 안타까워지고 슬퍼진다. 천재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 역 운명적인 것일까. 일찍 시작하고 못한 데서 자기들의 운명은 갈라진 것일까.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얘기 들려줄까. 어떤 동양의 여류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을 다 떼구 중년을 넘은 나이에 외국의 고명한 선생을 찾았더라나. 선생은 여류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한 곡조 들었을 뿐으로 실력을 알구 다음 날부터 다른 선생을 소개해 주구 그 지도를 받으라구 친절을 베풀었다는데 그 선생인즉은 누군구 하니 바로 노선생의 수제자로 나이가 스물도 못되는 젊은 아이드래. 여류 피아니스트는 늙은 재조를 탄식하면서 독약을 먹었다든지 물에 빠졌다든지……”
“그런 소린 왜 해요. 듣기 싫게.”
짜증을 내는 미란을 보고는 말이 지나쳤음을 뉘우쳤다. 미란의 어린 마음이 지금 커다란 번민 속에 있음을 알 때, 그 때늦게 솟는 열정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의 마음을 누그려 주어야 할 책임을 느끼면서 일부러 괴덕스런 태도를 지녀 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내 묻는 시험에 대답하면 미란의 소질을 말해 주지. ——쇼팽의 음악을 들었으니 말이지 그는 몇 해에 났던가.”
“…….”
“일천팔백십년. ——구년이라는 설두 있으나 십년이 바른 듯. 그의 유명한 사랑의 상대자가 누구던가.”
“조르주 상드.”
“것봐. 거저 안다는 게 사랑이야. 사랑이라면 모르는 게 없거든. 그럼 상드와 이전의 그가 실연당한 사람이 있었지. 스물대여섯 살 때.”
“몰라요.”
“마리라는 소녀. 열일곱 살 되는.”
다리도 피곤한 김에 찻집으로 미란을 데리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미란은 선언하는 듯이 현마를 바라보았다.
“피아노를 시작할 테예요. 집에 가면 곧.”
차 한잔을 분부하는 정도의 말솜씨였다. 다따가 당돌하게는 들렸으나 현마도 태연하게,
“기특한 생각이지, 또 한 사람의 천재 탄생되다.”
“천재는 못 따라 가더래두 있는 힘 시험해 보아야 마음이 시원할 것 같아요.”

“아무렴, 공부를 해야지 아직두 생애가 기니까. 사람이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 여간 중대한 일이게.”
다음이 중요한 대목이었다.
“——피아노를 사 주시겠어요.”
천연스럽고 수월하게 내던졌다.
“피아노——”
현마도 이 대목에서는 막히는 듯 말을 머뭇대고는 미란을 꼿꼿이 바라본다.
“사주시겠어요, 안 사주시겠어요——대답만 하세요.”
다지는 바람에 얼삥삥해지면서 목소리조차 당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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