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본래모습 찾아주기 프로젝트
역사 인물 본래모습 찾아주기 프로젝트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7.03.17 13:27
  • 호수 5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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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엔 지나가는 여학생을 붙잡고 꿈이 무엇이냐 물으면 열 명 중 일곱, 여덟은 현모양처라 했다. 현명한 어머니이자 어질고 좋은 부인. 말은 참 고운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여자는 찾기도 힘들고, 그런 여자를 아내로 원하는 남자 또한 드물다 한다. 하긴 경제여건이 남자가 혼자 벌어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으니 남편들 입장에서 돈도 벌지 않고 집에서 자신만 바라보며 뒷바라지 하겠다는 여자들이 부담스럽기도 하겠다.
현모양처라는 말만 나오면 구구단 외우듯 저절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신사임당이다. 지금은 각종 뇌물의 단골소재로 등장해 박카스나 비타민 박스에 담겨 뒷골목에서 주고받는 신세가 된 신사임당이 그려진 오만원권 지폐. 2009년이었던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새로 만드는 오만원권 지폐에 여성 위인 한명을 넣기로 했는데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신사임당이라는 한국은행 발표가 있었다.
현모양처로서 남편 보필 잘하고 바느질도 잘하고 영재교육에도 탁월했던 신사임당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여성 인물이란 것이 선정된 이유다. 여성이 이룰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업적은 바로 현모양처인 것인가? 그 당시에 나는 기자회견을 하고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반대를 했다.
현모양처가 싫은 것도 아니요, 신사임당이 미워서도 아니다. 기왕 여권 신장을 위해 넣는 것이라면 내조를 잘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무슨 공헌을 했는지 따져보고 선정함이 옳지 않겠나 하는 이유에서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이 좋은 아버지였는지 좋은 남편이었는지 따지지 않고 그가 이룬 업적만 가지고 우리가 평가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원래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남편인 이원수가 첩을 들이는 것에 반대해서 자식들을 집에 놔두고 마음의 평정을 찾겠다고 금강산으로 수행을 떠나기도 했고, 결혼 후에도 시댁에 가지 않고 친정에 남아 친정부모를 보살폈다. 또한 48세에 병으로 죽을 때에도 ‘절대 첩을 들이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따져보자면 양처는 결코 아닌 게다.
학자가 된 아들 율곡이나 예술가인 딸 매창에게도 현모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보통 엄마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 뒷바라지나 자식을 챙기는 대신에 시나 서화 분야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발전시켜나간 훌륭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이같은 예술가 신사임당이 사후에 갑자기 현모양처로 둔갑해버린 것일까. 현모양처(당시에는 양처현모)란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때는 일제 강점기 때라 알려져 있다. 전쟁으로 남성 노동력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부인으로 하여금 노동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순종하고 전쟁터에 있는 동안에도 가정에 최선을 다하게 하여, 나라 발전을 이룩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 한다.
이것이 차차 대중적인 이미지로 굳어지게 됐고, 조선의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를 부각시키는 와중에 그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 아들 잘 키운 현모양처’의 본보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실 신사임당이 이렇게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이용되지만 않았더라도 화폐인물로 전혀 손색이 없었기에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말 그대로 ‘여성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사임당하면 현모양처, 현모양처하면 신사임당’으로 자동 인식되는 상황에서는 지폐에 신사임당을 넣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반대했더니, 한국은행 측에서 일단은 화폐에 넣고 차차 신사임당을 재해석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후 8년이 지난 현재, 신사임당이 갑자기 TV 드라마와 책 그리고 만화에 왕창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전 우리가 알던 순종적인 현모양처 신사임당이 아닌 자유롭고 진취적인 예술가의 모습으로 말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줘서 고맙다’하며 이제 신사임당은 맘 편히 누워 계시리라 믿겠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TV 드라마에는 결혼 전 이겸이라는 화가와 애틋한 사랑을 하고 그 후에도 줄곧 이루지 못한 로맨스에 가슴 아파하며 사는 걸로 나오던데, 신사임당에게 결혼 전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어느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다. 물론 모든 고전드라마가 당시 시대상황을 감안해 재미를 더하기 위해 그렇게 많이 만들기도 한다는 걸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우리들 머릿속에 현모양처의 아이콘이었던 신사임당인데, 그런 식으로 갑자기 확 바꿔버리니 따라잡기 힘들 수밖에 없다. 하긴, 애초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로 둔갑시킨 것 자체가 큰 혼란을 자처한 게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둔갑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역사 인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이제라도 내친김에 ‘역사 인물 본래 모습 찾아주기’ 프로젝트라도 슬슬 시작하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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