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부 뒤에 나타난 큰 정치인
명승부 뒤에 나타난 큰 정치인
  • 정재수
  • 승인 2007.08.24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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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에프(IMF) 체제 하에 들어가 온 국민이 우울해 하고 있던 1998년 7월 어느 새벽 한국인들은 가슴을 졸이며 스타탄생을 지켜봤다. 엘피지에이(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 유에스 오픈 골프대회 결승 연장전. 잘 나가던 박세리 선수가 친 공이 물웅덩이 가장자리 풀숲에 살짝 걸렸다.

어떻게 칠까. 세계가 숨을 죽였다. 이때 박세리 선수는 골프화를 벗고 물웅덩이로 들어갔다. 양말을 신은 곳까지지만 하얀 발목은 세계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 물속 스윙이 승부를 갈랐다. 골프사에 남을 명장면,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똑같다 할 수 없으나 최근에 그보다 더한 명승부를 지켜봤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그 주인공이다. 알고 있듯이 승부에서 그는 졌다. 졌으나 이긴 것보다 더 아름다운 승복을 했다. 지지자들이 눈물바람을 할 그 순간 그는 선거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자고 호소했다. 한 측근에 의하면 개표결과를 보고 받은 박 전 대표는 상처입을 지지자들을 먼저 걱정했다고 한다.

이번 한나라당 대선이 어떤 게임이었는가. 여론조사에서 선거일 막판까지 한 번도 앞선 적이 없을 만큼 열세였다. 유력 일간지와 방송이 적게는 7%에서 최대 10% 포인트 이상 차이로 이명박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1.5% 포인트 차이로 갈렸다. 그것도 당원들과 국민선거인단의 투표에서는 400여 표나 앞섰다. 조사대상 1명을 여러 명으로 환산하는 시민 여론조사에서 뒤져 패배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보다 더 억울할 데가 없는 결과였다. 한국인들이 귀신이 곡할 정도로 절묘한 선거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문제를 삼고 탈당을 하거나 불복을 해도 적당히 명분이 될 만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표는 지지자들을 다독이며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박세리가 온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듯이 경선 명장면을 통해 박근혜 전 대표가 큰 정치인으로 태어나는 것 같다.

축구시합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는 왕왕 이런 일이 있다. 게임에 지고서도 승복하지 않으며 상대에게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달랐다. 뒷말이 무성하기 마련인 경선 뒤를 깔끔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수많은 지지들에게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큰 정치인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기쁘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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