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창은 망설이지 않고 어두워졌다
그리고 창은 망설이지 않고 어두워졌다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7.05.26 13:23
  • 호수 5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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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창은 망설이지 않고 어두워졌다

독사에게 물린 집을 보았다,
벼락에 물린 집을 보았다
벼락이 집의 목덜미를 힘껏 움켜쥐고 있다

꿈틀꿈틀 기어가 방 안을 들여다보는 벼락
집 한 채 먹어치우는 저 차분한 독사들

주인은 미처 이름도 챙기지 못하고 떠났다

박지웅(시인) 

**

잎 하나 없는 겨울담쟁이가 빈집을 점령하고 조금씩 먹어치우고 있다. 벼락이 집을 강타한 것처럼, 꿈틀 꿈틀 기어가 방안을 기웃거리는 독사들처럼 담쟁이는 아무도 모르게 닥친 불운처럼 집 한 채를 파멸시키고 있다. 머잖아 담쟁이로 뒤덮인 저 집은 제 모습을 잃어버릴 것이다. 저 집에서 살던 사람들도 까마득히 잊혀질 것이다. 이름조차 챙기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살다보면 날벼락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람들은 낮은 곳에서 손발이 부르트도록 사는 사람들일 경우가 허다하다. 많이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동아줄을 붙잡고 살아남지만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은, 의지할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은, 벼락을 맞는 순간에 독사에게 물린 순간에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난다. 벼락을 맞아도, 독사에게 물려도 누군가 붙잡아 일으켜줄 따뜻한 손 하나만 있다면 세상은 다시 살아볼 만하다고 여겨지지 않을까.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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